|
|
|
얼마나 몰입하여 재미있게 읽었던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주요 등장인물 이름을 기억하고 대강의 줄거리가 생각난다. 이후에 읽었던 대부분의 무협물이 천하제일검 혹은 절대무공을 지닌 슈퍼맨류의 초절정고수가 주인공인 반면 '팔만사천검법'의 하선재는 뛰어난 무공 실력자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마동석 스타일의 최강자가 아니니 주인공의 생사 여부가 굉장한 흡입력을 주는 요소로 작용하여, 중학생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간 것이다. 그 후 사마달, 검궁인, 금강, 야설록 등 기라성 같은 국내 무협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며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만화책과 함께 무협지는 내가 '서사'를 다루는 만화 분야에 투신한 양대 자양분이 되었다.
'팔만사천검법'은 나중에 알고 보니 국내 창작무협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작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만화계에 입문하여 무협지 출신 스토리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김대식(을제상인) 작가의 근황에 대해서 일부라도 알게 되었고 작품의 가치도 뒤늦게 발견하였다.
1979년 초판이 간행되었던 '팔만사천검법'은 '삼절마검'이라는 제목으로 1993년 복간되었다가 지금은 완전히 절판되었다. 온라인 중고매장 같은 곳에 가끔 나오던 고가의 중고책도 이제는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중고 삼절마검은 너무 비싸서 감히 구입할 엄두를 못냈다. 전자책이나 텍스트라도 찾을 수 없나 싶어 가끔 인터넷을 뒤져 보았지만 온라인에서는 흔적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이번 주 '삼절마검'을 선물 받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무협지 7만 여권을 보유하고 있고, 무협지박물관을 세우는 것이 평생의 꿈인 초절정(?) 매니아를 우연한 인연으로 만났다. 무협지 '팔만사천검법'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했더니 갖고 계신 책에 여분이 있다면서 선뜻 보내준 것이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다시 읽어 보니 처음 무협지를 읽던 당시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잊어버린 영덕중학교 1학년 시절을 통째로 선물 받은 것 같은 감동과 전율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