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는데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재경 영덕군민 5만 향우들의 조직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재경축산면회장을 5년이상 했고 2년동안 상임부회장을 했습니다만, 큰 조직이라서 잘 이끌지 걱정이 앞섭니다.
재경 영덕군 향우회는 대구 향우회와 같이 영덕군과 나란히 고향 영덕을 이끌어나가는 두 개의 수레바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영덕군의 존속과 발전에 도움이 되고, 향우들의 행복한 서울 생활이 되도록 선배님 후배님과 같이 회를 잘 이끌도록 하겠습니다.
2. 앞으로 어떻게 향우회를 이끌어 갈지 구상하는 계획이 있는지요?
향우회는 친목도모도 좋지만 향우들의 서울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조직이 되어야 하고, 또한 고향영덕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어야 향우들이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기존에 하던 3.18행사 참석, 신돌석 장군 묘소참배, 영덕군민회 참석은 그대로 하면서도 몇가지 새로운 사업을 추가했습니다.
첫째, 향우사업체 애용프로그램입니다. 향우들이 사업하는 것을 도와주자는 취지입니다. 현재는 누가 어떤 업에 종사하는 지를 대부분 모릅니다. 같은 값이면 우리 향우들의 업체를 이용해야지요. 향우들의 업체를 모아서 홍보하여 알게 하고 애용해주자는 내용입니다.
향우들의 예금을 고향 금융권에 이체하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이제는 예금 1억원까지는 정부에서 환급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이전을 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각 출신지역에 맞추어 안내하고 있습니다. 벌써 10명 정도가 이 행사에 동참했습니다.
영덕군이 운영하는 숙소를 재경과 재구 향우들이 항상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영덕에 가서 잘 곳도 마땅치 않아 쓸쓸함을 느낍니다. 선착순으로 배정이 되는 것으로 압니다만, 향우들에게 기존 정해진 대금을 받으면서 우선 배정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조례 등으로 공론화를 거칠 수 있을 겁니다. 고향사랑기부제를 실시할 때 저희 향우들이 다른 시군이 아니라 고향 영덕에 기부하는 것에 대응하는 것이니까 충분히 설명이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3. 생각이 다른 향우들을 하나로 결집시킬 방안은?
저의 회장으로서의 방침은 향우들에게 도움이 되는 향우회, 고향 영덕에 도움이 되고 고향영덕이 우리 향우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고 성과를 내는 것입니다.
그간 친목 위주의 향우회에서 위와 같은 사업을 추진하는 향우회가 되면 성과가 있으므로 사람들이 더 많이 향우회에 참석하고 영덕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저는 향우회에도 분명한 목표와 비젼이 제시되면 하나로 결집이 쉬워질 것으로 봅니다.
과거 1940-1960년대 영덕군은 인구 12만에 경북에서 최고 부촌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어항이 있어서 수입도 많아서 전국적인 인물도 많이 배출되고 교육도 앞섰었습니다. 이런 영덕의 위상을 되찾아야합니다. 영덕군수님이 앞장서야하지만, 그 한축인 향우회도 이런 목표를 세우고 향우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도록 하겠습니다.
9개읍면의 사무국장을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결정사항이 전달되도록 하겠습니다.
4. 유명무실해진 3개의 면민회 회생방안이 궁금합니다.
저희 재경향우회는 9개읍면의 연합체적인 성격을 가집니다. 그래서 각 읍면의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이 됩니다. 3개면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재경향후회가 나의 생활에 꼭 필요한 단체라는 자부심이 커지면 연대감도 높아집니다. 저는 이것을 영덕인으로서의 정체성이라고 봅니다. 강한 정체성은 강한 책임감으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3개 면민회도 다시 열리고 회장단이 꾸려질 것으로 봅니다.
북부 4개면과 남부 5개읍면의 통합송년회 모임을 하면서 결속을 다지는 것도 생각해봅니다.
5. 현재 직업과 앞으로의 계획은
네, 저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영덕군 축산항에서 수산업을 하던 집안에서 태어나 축산항 초등, 영해중고를 졸업하고 한국해양대학을 다녔고, 상선에 근무하면서 31살 때까지 축산항집에 주소를 두고 기거를 했습니다. 32년을 축산항에 주소를 두고 살았으니까요. 누구보다도 고향을 사랑하고 고향 사정을 잘 아는 편입니다. 저희 집안은 1640년부터 안동에서 내려와 염장에서 (신)안동김씨 집성촌을 이루며 400년을 영해와 영덕을 지켜왔습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집안과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강합니다. 저는 항상 경북 영덕 축산항 출신이고 영해중고 출신임을 강조합니다. 전통 있는 집안에서 자랐고, 고향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아 영해고를 나와 최고의 대학을 나왔고, 최고의 직장에서 호사를 누렸습니다. 이러한 영덕인으로서의 강한 정체성은 저에게 고향에 보답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일깨워줍니다. 그래서 영해중고 총동창회장에 이어서 재경향우회장도 맡게 되었습니다. 선배들이 조금만 잘 이끌어주면 후배님들과 향우님들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보아서 그런 봉사를 하고자 합니다.
현재는 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 소장으로 있고, E1의 사외이사, 김&장 비상임 고문으로 있습니다. 해사법원 활성화 추진위원장, 바다저자와의 대화 대표 등 5-6개의 조직을 이끌고 있습니다. 특히 해양수산분야 전문가로 알려져 있고, 유퀴즈에서 97회에 나간 바가 있습니다. 영덕장학회(영덕학사) 이사, 영교위 이사도 합니다.
6. 본인의 고향에 대한 철학은
고향영덕은 역사적, 경제적으로 최고의 고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축산만호가 동해를 지켜준 호국의 고장, 목은 이색 갈암 이현일 선생과 같은 유학의 거두들이 나신 유학의 중심지이고, 아름다운 산천이 주는 서정성, 동해바다는 우리에게 자부심을 줍니다. 저의 "바다와 나", "선장교수의 고향사랑" 수필집에 이런 고향사랑과 자부심의 내용이 가득합니다.
저는 작은 조직에서 큰 조직으로 진출하면서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축산항초등이라는 작은 집단에서 영해중고, 부산의 한국해양대, 그리고 서울의 고려대와 김&장이라는 큰 조직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조직에서 큰 조직, 즉 비주류가 주류에게 도전하는 형국이었습니다. 항상 자신을 낮추어 주류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작은 조직과 집단의 서러움도 많았습니다. 작은 조직과 집단은 하나가 되어 합쳐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영덕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서울의 해양수산 전문가들은 "김인현 교수(선장)하면 영덕이고 영덕하면 김인현 교수(선장)라고 할 정도로 영덕을 위한 홍보대사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7. 고향과 관련된 추억과 향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고향을 사랑하면 일이 잘 풀린다는 추억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의 지도교수님이 처음 만나서 2개월 만에 1995년 평해 온천에 가신다는 말을 듣고 제가 "예, 제가 모시겠습니다. 평해는 영해의 위에 있습니다"라고 했는데, 선생님께서 "영해라는 곳이 있는가?"라고 질문했습니다. 선생님은 "나의 선조가 영해부사를 1660년대에 했는데, 다른 집안에서 영해가 없는데 영해부사는 가짜라고 공격을 해서 당하고만 있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영해는 옛날에 부사가 있던 곳입니다. 영덕문화원에 가면 영덕군지가 있고 역대 부사의 이름이 다 나옵니다"고 답했습니다. 평해에서 온천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영덕문화원에 가서 영덕군지를 확인하니 정말 선생님의 선조님이신 채부사님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너무나 기뻐하시면서, "자네가 우리 집안을 건져주었네"하시면서 저를 인정해주셨습니다. 서울로 가시지않고 저의 큰집인 염장의 호동고택과 축산항의 저희 집안을 둘러보시고 하룻밤 주무시고 가셨습니다. 이때부터 저의 지도교수님이 저를 아끼시면서 결국 저를 자신의 뒤를 이어가는 제자교수로 지명해서 제가 고려대 법대 교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고향을 사랑해서 고향의 역사책을 보았기 때문에 선생님께 영해부사목록을 소개해드릴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고향을 사랑하여 고향의 모임에 앞장서면 언젠가는 발복하여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향우 여러분 고향영덕을 사랑하면 저와 같이 좋은 일이 생깁니다.
향우회이던 동창회이던 고향을 위해서 앞장서시는 분들은 칭찬받아 마땅하고 항상 존경받아야하고 명예롭게 퇴진하고 인정받아야한다고 봅니다. 역대 회장님들 임원님들 임원이아니어도 봉사하고 헌신하신 선배님들 후배님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진정한 영덕인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