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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라는 이름으로

박문희 기자 입력 2026.10.16 07:54 수정 2026.10.16 10:54

펜을 쥐는 순간 책임도 함께 따른다
취재가 감정과 이해관계의 도구가 되면 언론의 신뢰는 무너진다
기자의 이름은 특권이 아니라 스스로를 더 엄격히 묶는 약속이다


기자라는 이름을 다는 순간 그 무게도 함께 짊어져야 한다. 사회의 부조리를 밝히고 약자의 억울함에 귀 기울이는 것. 알려지지 않은 사람과 사건에 빛을 비추는 것. 그것이 기자의 본분이다.

기자에게는 취재라는 이름으로 많은 권한이 주어진다.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의혹을 확인할 수 있다. 고소·고발과 행정기관의 조사 결과도 취재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 권한은 공익을 위한 감시 수단이어야 한다.

문제는 취재가 사적 감정과 이해관계에 휘둘릴 때다. 자신에게 편의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업자나 공무원을 반복적으로 압박하거나 개인적 갈등을 기사로 끌어들이는 순간 펜은 감시 수단이 아니라 위협의 도구가 된다.

탐사보도라는 이름도 면죄부가 될 수 없다. 합리적 의혹이나 구체적 제보 없이 작은 흠 하나를 찾겠다며 정보공개와 민원을 반복한다면 스스로 물어야 한다. 그것이 정말 취재인지, 아니면 상대를 괴롭히기 위한 수단인지 말이다.

기자가 남의 위법과 부당함을 따지려면 자신에게 더 엄격해야 한다. 취재 대상에게 법과 원칙을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은 그 기준을 외면한다면 기사의 신뢰도 함께 무너진다.

한 기자가 다른 기자에게 기사 협조를 요청해 보도가 이뤄졌지만 추가 취재 과정에서 제보 내용과 확인된 사실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자와 업체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말도 나왔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사실로 단정할 수는 없다. 결국 추가 보도는 이어지지 않았고 관계도 멀어졌다고 한다.

여기서 경계해야 할 지점은 분명하다. 기자가 특정 사안에 사적 감정으로 매달리는 순간 기사는 방향을 잃는다. 호감과 반감이 사실 판단에 스며들면 객관성은 흔들린다.

취재를 하다 보면 끝내 진실에 닿지 못할 때도 있다. 당사자 주장이 엇갈리고 자료가 부족한 경우도 많다. 그럴수록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기자의 판단으로 채워 넣어서는 안 된다.

기자의 펜은 가볍지 않다. 한 줄의 기사가 한 사람의 명예를 흔들고, 한 기업의 생존과 한 공무원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기자에게는 더 치열한 확인과 더 냉정한 절제가 필요하다.

기자는 권력을 감시해야 한다. 불법과 부당함도 밝혀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기자 자신이 또 하나의 권력이 돼서는 안 된다.

기자라는 이름은 특권을 위한 명함이 아니다. 더 많이 확인하고 더 신중하게 판단하며 자신이 쓴 한 줄에 책임지겠다는 약속이다.

펜은 날카로워야 한다. 그보다 먼저 바르게 서 있어야 한다. 그 끝에는 사람과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겠다는 희망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기자라는 이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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