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죽변은 이름부터 바다 냄새가 난다. ‘죽변(竹邊)’은 대나무가 많은 바닷가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에는 화살 만드는 대나무를 특별 관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동해의 절경에 역사와 생활 문화가 겹친다. 처음 죽변을 찾았다면, 가장 효율적인 동선은 죽변항을 중심으로 바다 쪽은 풍경, 안쪽은 전시와 기록을 엮는 방식이다.
첫 코스는 죽변등대 일대다. 1910년에 세워진 죽변등대는 경상북도 지정 기념물로, 울진 북쪽 관문에서 오랫동안 배들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등대 주변 대나무 숲길 ‘용의꿈길’은 짧게 걷기 좋다. 등대공원 전망대에 서면 죽변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절벽 위 붉은 지붕의 ‘어부의 집’은 드라마 세트장으로 알려져 사진 촬영지로도 인기가 많다.
등대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이 하트해변, 이른바 용추곶이다. 해안선이 하트 형태로 굽어 연인과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이 찾는다. 탁 트인 바다와 절벽선이 만드는 윤곽이 뚜렷해, 날이 맑을수록 ‘인생 사진’이 나온다.
죽변항 주변의 체험형 랜드마크로는 죽변해안스카이레일이 꼽힌다. 시속 5km 안팎의 느린 속도로 바다 위를 달리는 모노레일이다. 급하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아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동해의 수평선을 ‘여유’라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바다 풍경을 충분히 담았다면, 지식과 기록으로 여행의 밀도를 높이는 순서가 좋다. 죽변항 북쪽에는 국립울진해양과학관이 있다. 동해 수중 생태계, 해양 과학 기술, 지구 온난화 등 해양 환경 자료를 전시한다. 아이와 함께라면 체험 전시를 중심으로 동선을 잡는 게 효율적이다.
울진의 역사 한 페이지를 만나려면 봉평리 신라비 전시관이 빠질 수 없다. 봉평리 신라비는 신라시대 지방 통치와 사회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으로 평가된다. 1988년 주민이 밭을 갈다 발견한 뒤 세상에 알려졌고, 524년 법흥왕 11년 무렵 세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비문에는 이사부 등 신라 장군이 반란 세력을 진압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동해안 북진과 지방 통치 확립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걷기 여행을 선호한다면 해파랑길과 봇도랑길이 선택지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지는 750km 트레킹 코스다. 울진 구간은 절벽과 숲, 마을과 바다가 맞물려 특히 풍경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24코스(후포~기성)부터 28코스(북면~원덕)까지 이어져 일정에 맞춰 ‘끊어 걷기’가 가능하다. 봇도랑길은 농수로를 활용한 2.2km 걷기 길이다. 길이 짧고 평지 위주라 부담이 적다. 왕피천 풍경을 옆에 두고 소나무숲길, 모래자갈길, 나무데크를 번갈아 지나며 리듬감 있게 걸을 수 있다.
여행의 마지막 변수는 교통인데, 죽변은 최근 조건이 달라졌다. 올해 초 동해선 포항~삼척 구간이 열리면서 울진 구간에 새 역이 들어섰고, 그동안 자가용 중심이던 접근성이 한층 개선됐다. 울진군은 대중교통 이용자를 위한 지원도 내세운다. 농어촌버스 무상운행을 지원해 관광객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했고, 지역 축제 기간에는 방문객 이동 편의를 위해 무료 운행을 계획하고 있다. 관광택시 지원도 운영 중이다. 이용자가 일정 금액만 부담하면 4시간 동안 택시로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방식이다. 기사들이 코스 안내를 돕는 ‘가이드형 이동’이란 점이 장점이다.
죽변 여행은 결국 ‘짧은 동선에 많은 표정’을 담는 데 강점이 있다. 등대에서 바다를 보고, 하트해변에서 지형을 읽고, 스카이레일에서 속도를 늦춘다. 해양과학관과 신라비로 의미를 보태고, 해파랑길과 봇도랑길로 몸의 기억까지 남긴다. 차가 없어도 움직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만큼, 죽변은 이제 ‘일정이 빡빡하지 않은’ 여행지로 다시 정의될 가능성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