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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인현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영해중고 총동창회장) |
고향신문은 영덕, 영양, 청송의 주민을 대상으로 한다. 매주 도착하는 고향신문에 영양 소식이 나온다. 주위에 영양출신이 많다. 조선시대 같은 영해부 소속이었기 때문에 나의 고향 영덕과 영양은 같은 뿌리이다. 그럼에도 나는 60평생 영양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 가까우면서도 먼 곳이 영양이었다. 영양과 가까워질 계기가 마련되었다.
금년 봄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나에게 7촌 아지매가 창수 나라골 재령이씨네 집에 시집을 갔다. 그 따님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반가웠다. 정영방 선생께서 건축했다는 서석지를 가진 정씨 집안의 며느리가 되셨다고 한다. 입암면 연당 소재 서석지로 8촌 누님을 뵈러 갔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안동대학의 정중수 교수를 알게 되었다. 서석지의 주일재에서 하룻밤을 유하면서 정 교수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문협 영양지부에서 주관하는 제19회 문향골 문학캠프에 나를 강사로 초대하였다.
7월 29일 12시반경에 입암면 면소재지의 하회촌 식당에 도착했다. 허름한 곳이다. 주인이 창수면 출신이라고 하니 반갑다. 두들마을의 재령이씨 후손이신 이장희 병원장께서도 식사모임에 참석했다. 지난번 두들마을을 방문했을 때 갈암 이현일 선생을 기리는 고가에 “해상(海上)고택”이라는 현판을 보았다. “해상”이라는 단어의 선택에 의아했다. 이 병원장의 설명은 “동해안 백성들이 동해안 바닷가에서 최고가는 어른”이라고 갈암 선생을 칭송했는데 이런 뜻을 기려서 “해상”이라는 단어를 넣었다는 것이다. 지인들과 올갱이국을 먹었다. 맛이 일품이다. 배추가 적절하게 들어가 있고 간도 좋아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영양의 맑은 강가에서 잡히는 올갱이라고 한다.
거의 50분을 북쪽으로 달렸는데 수비면 수하라는 곳에 도착했다. 청소년 수련원에서 등록을 했다. 등록대의 안내자는 등록하는 사람들에게 연필을 주면서 백일장에 참여하라고 한다. 박홍열 도의원께서 나를 보더니 “고향신문”에 글을 매번 잘 읽고 있다고 인사를 하여 나를 기분 좋게 한다. 영양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니... 신기하다. 언론의 힘이다. 일행들은 팀을 만들어 사회자의 지도에 따라 레크레이션을 했다. 이정록 시인께서 도착하여 저녁시간까지 강의를 들었다. 문학캠프이니 만큼 매번 문학관련 전문가를 불러서 참석자들의 문학에 대한 정서를 터치하는 것이 이 캠프의 장점이다.
저녁에도 윷놀이 등 시간을 보냈다. 황태진 문협회장님의 지도하에 몇 명이 모여서 참여자들이 제출한 시에 대한 심사를 했다. 나도 심사위원으로 초대되었다. 7편이 선정되었다. 반딧불이와 별이 시제로 주어졌었다. 수준 높은 내용들이 많았다. 방마다 사람들이 모여서 짝을 지어 문학관련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12시 전에 잠이 들었는데 5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잠을 푹 자서 그런지 몸이 개운하다. 창문의 커튼을 올렸다.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는 산의 모습이 여명과 어울려 선명하다. 깊숙한 산속의 아름다움이 있다. 아침 7시부터 산보를 한다고 하여 준비하고 나갔다. 오픈카를 타고 조금 떨어진 곳에 다녀온다는 것이다. 약간 불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트럭에 올라탔다. 고등학교시절 벼베기 작업을 갈 때 여러 명의 학생들이 트럭에 탄 것이 회상되었다. 10명 정도가 차폐시설이 없는 차에 올라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우리 차에는 김경종 영양문화원장님이 동승하여 친절한 설명을 해주셨다.
오픈카를 타서 위험하다는 나의 우려는 아름다운 산천으로 인해 모두 사라졌다. 시원스레 흐르는 물줄기가 쭉 이어졌다. 왕피천은 울진으로 흘러서 동해바다로 빠진다고 한다. 붉은 색깔을 띠는 소나무인 춘양목이 즐비했다. 울진의 금강송과 같은 과라고 보았다. 고급 소나무이다. 이 산을 넘어가면 울진바다가 나온다고 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오지인 오무마을에 다달랐다. 오지라고 하면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야하는데, 최근에 전기가 들어왔다고 한다. 워낙 깊어서 오히려 화가나 문인 등 조용히 휴가를 보내고 싶은 분들이 찾아온다고 했다. 정말 깡촌이다. 이런 버려진 곳을 관광상품화한 영양 사람들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도보로 오무마을을 산책해야겠다.
10시부터 나의 강의였다. 강의의 성공은 청중과의 눈높이를 어떻게 잘 맞추느냐에 있다. 참석자들은 대게 50대에서 60대들이다. 교육장, 교장, 교수 등 지식인들도 여러 명 함께하고 있다. PPT 40여장에 준비한 내용이 참석자들의 눈높이에 잘 맞다고 생각했다.
(i) 수필의 구성요소를 설명했다. 나의 수필은 해양수필이므로 바다 관련 소재가 있어야 한다. 소재는 충분하다. 다만, 수필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 문학성이 부족하다. 신변잡기가 아닌 수필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내용이 자신의 체험이어야 하고, 전달하고자하는 철학이 들어가 있어야한다. (ii) 나의 수필 “할머니가 나에게 남긴 선물”이라는 제목의 글이 위와 어떻게 부합되는지 설명을 했다. 할머니와 나와의 에피소드를 소재로 한다. 초등 4학년 때 일이다, 우리 집의 수산업이 기울었다. 그물 수선비를 작업자들에게 지급하지 못했다. 수선비를 받지 못한 작업자의 아들인 친구가 나의 할아버지를 “도둑놈”이라고 불렀다. 이를 들은 할머니가 밤이 되자 친구의 집에 가서 단호하게 친구의 어머니를 나무랐다. 할머니의 처음이자 마지막 외출이었다. 다음부터는 할아버지가 도둑놈이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 어려울 때면 할머니처럼 사람들에게 항의도 하고 나의 뜻을 설명하여 이해도 구했다. 덕분에 오늘의 성공에 이르렀다. 할머니는 재산을 유산으로 손주들에게 주지 못함을 한탄했다. 경제적 유산보다 할머니가 나에게 남기신 정신적 유산이 더 소중하다. 이 점을 이 글의 주제이자 철학으로 삼았다. (iii) 수필의 다양한 소재를 설명했다. 바닷가 어촌에서 태어났고 가업이 수산업이었다는 점, 선원과 선장으로 선박에서 근무한 점 그리고 해상법 교수가 된 점 등에서 나의 수필의 소재가 나온다. (iv) 마지막에 내가 32살 선장으로 좌초사고가 나서 실패한 다음 고려대 법대 교수가 되기까지의 인생역정을 설명했다. 수필 “1994년 여름”의 내용이다.
김형석 선생의 “백년을 살아보니”에서 얻은 지혜를 바탕으로 한 “시골출신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수필도 소개했다.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나와 같은 사람은 주어진 점수가 70점이다. 도시에서 일류고등학교를 나오면 이미 100점의 점수가 주어진다. 같은 고려대 법대교수가 되어 두 사람 모두 100점을 달성했다. 그가 졸업한 시골고등학교 중에서 명문사립대 교수는 그가 유일할 것이다.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하다. 시골출신은 30점을 초과 달성했으니 더욱 행복하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자, 이 대목에서 많은 참석자들이 박수를 보내주었다. 영양의 이웃인 영해고등학교 졸업생이 잘 성장했고 잘 성장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싶었다. 강의의 반응이 좋았다. 수비중학교 선생님, 명문 영양여고의 교장선생님이 나를 강사로 초대하겠다고 했다.
백일장 시상식을 했다. 우수상을 김유희 영양교육장이 받으셨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교육장은 이런 곳에 참여를 하지 않는 것이 일상인데, 이 분은 1박을 하시고 시 백일장에 참여를 하신 것이다. 명문 고등으로 널리 알려진 영양여고의 김옥순 교장선생님도 줄곳 행사에 참석하셨고 밤늦게까지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나의 강의를 들으신 것은 물론이다. 영양이라는 곳은 무언가 다른 점이 있다고 느꼈다. 인구가 작고 소멸예상지역이라서 군민들, 특히 지도자급의 사람들이 단단히 뭉쳐있는 느낌이 들었다. 행사 시작 전에도 도의원도 다녀가셨다. 김경종 영양문화원 원장도 큰 역할을 하신다. 정중수 교수는 서울, 대구, 부산에서 10여명 자신의 지인을 초대했다. 윤근수 문화매일신문 지사장, 이원형 문화관광해설사, 윤철남 남해화학 영양대리점 대표 등도 참석했다. 영양의 지도자급들의 단합되고 희생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 이런 열기가 모아져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영양여고가 탄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행사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헤어질 시간이었다. 모두 내년에 만날 것을 기약했다. 우리 일행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정중수 교수의 초대로 우리나라 3대 정원의 하나인 서석지에 도착했다. 대구의 송외숙 선생이 차 도구를 미리 가지고 오셨다. 정성이 담긴 차를 우리는 마셨다. 연꽃이 아름답게 핀 서석지의 대청마루 경당에 앉은 8명의 선남선녀들은 모두 인생 60을 넘긴 사람들이었다. 우리 일행은 격조 높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도를 즐겼다. 이분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참석한 유경험자들이다. 이구동성으로 내년에도 다시 문학캠프에 참석할 것이라고 한다. 나도 물론이다. 참으로 좋은 캠프였다. 이번에는 강사라서 마음의 부담이 있었는데, 다음에는 순수한 참석자로 등록해서 문학도 배우고, 영양 산천의 아름다움도 다시 한번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
참석자의 2/3는 영양 출신들이다. 외부 출신들도 1/3은 된다. 참석자들의 표정은 모두 밝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강의 도중 나의 강의를 집중해서 들으면서 선뜻 공감해주던 참석자들의 열린 마음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산천도 아름답고 사람도 아름다운 곳이 영양이다. 단시간에 이를 발견하고 즐길 수 있는 행사가 바로 한국문인협회 영양지부가 주최하는 영양 문향골문학캠프이다. 행사를 주관하신 모든 분들과 참석자들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주심에 감사드린다. 나의 가슴에는 영양의 산천과 사람들이라는 방이 하나 만들어졌다. 매년 참석하면서 그 방을 아름답게 채워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