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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금요칼럼】 달빛은 여전히 밝은데… 옛 선인의 지혜로 맞이하는 한가위의 情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6.09.21 11:55 수정 2026.09.21 11:58

↑↑ 장빈(빈에듀컬처 대표/ 유튜브 갤러리빈)

가을의 문턱을 넘어 한가위에 다다르면 마음은 어느새 고향 청송의 주왕산 자락으로 달려간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주왕산 아래 신풍리, 고즈넉한 사과밭 옆이었다. 붉고 탐스럽게 익어가던 사과향 속에서 자란 사과집 딸에게 추석은 온 마을이 하나의 거대한 온기로 출렁이던 잔칫날이었다.

달밤이면 친구들과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비포장 들판을 누비던 기억,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에 몸을 싣고 덜컹거리며 내려가면 사립문 밖에서 밤바람을 맞으며 자식을 기다리시던 부모님의 모습은 세월이 흘러 멀리 제주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지금도 가슴 한구석을 깊게 울린다. 비록 고향을 떠나 살아가고 있지만, 한가위 달빛만은 언제나 그 시절의 따스했던 사립문 앞 온기를 그대로 품은 채 찾아온다.

본래 추석(秋夕)은 '가배(嘉俳)'라 불리며 한 해 동안 피땀 흘려 지은 농사에 감사하고, 둥근 보름달처럼 풍요로운 마음을 온 마을 이웃과 나누던 민족 최대의 공동체 축제였다. "더도 말고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오랜 덕담은 결코 풍족한 물질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물목을 터주고 들밥을 나누며 서로의 고단함을 어루만지던 공동체적 지혜와 따뜻한 정이 만들어낸 결실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맞이하는 한가위의 풍경은 씁쓸함이 앞선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로 서민들의 장바구니는 가벼워졌고, 삶은 하루하루가 팍팍한 생존의 싸움이 되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민생을 보듬고 사회적 통합을 끌어내야 할 정치가 오히려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며 국민의 마음을 흉흉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양수겹장(兩手兼將)의 정쟁(政爭)속에서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서로를 향한 비난은 사회 전반으로 번져가고 있다. '이웃사촌이 4촌보다 낫다'던 옛 속담이 무색할 정도로, 오늘날 우리 사회는 담장을 높이고 타인을 경계하는 삭막한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동양의 철학자 맹자(孟子)는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라" 했다. 경제적으로 안정을 얻지 못하면 바른 마음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팍팍한 경제 현실이 국민의 마음을 각박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도자는 백성의 삶을 넉넉하게 보듬는 정치를 펼쳐 마음의 평온을 되찾아주어야 할 책무가 있다. 삼국지의 유비가 제갈량을 얻기 위해 세 번이나 시골 초가를 찾았던 '삼고초려(三顧草廬)'의 겸손함과 진정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옛 선인들은 아무리 삶이 고단해도 가을 단감나무 끝에 '까치밥' 몇 개를 남겨두는 미덕을 잊지 않았다.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밥상을 차려내던 그 마음은, 풍족해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내기 위해 마음의 여백을 내어주는 삶의 지혜였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타인을 보듬는 이러한 마음의 여백일지도 모른다.

하늘을 비추는 보름달빛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밝다. 이번 추석만큼은 정치적 소음과 팍팍한 경제 현실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옛 선인들이 전해준 지혜와 정을 가슴에 품었으면 한다. 주왕산 달빛 아래 잘 익은 청송 사과의 붉은 단맛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이웃의 안부를 묻고, 영덕의 푸른 바다처럼 깊은 시선으로 서로의 아픔을 품어주는 지혜로운 한가위가 되기를 소망한다.

어릴 적 고향집 사립문 밖에서 흐르던 그 따뜻한 온기를 다시금 떠올리며, 고향을 지키는 이들과 타지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번 명절이 마음을 회복하는 성찰과 위로의 시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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