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고기를 잡아주면 한 끼밖에 먹지 못하지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면 평생 먹고살 수 있다.”
널리 알려진 이 격언은 추석 전 민생지원금, 이른바 ‘에너지연금’을 둘러싼 울진군의 재정 운용을 돌아보게 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 주민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정책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약 140억원이라는 적지 않은 재원을 한 번의 현금성 지원에 투입하는 것이 울진의 미래를 위해 최선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치열한 검토가 필요하다.
현금성 지원의 장점은 분명하다.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군민에게 즉각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추석을 앞둔 시점이라면 가계 부담을 덜고 지역 내 소비를 촉진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사용처가 지역에 집중된다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매출에도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즉각성’이 현금 지원의 한계이기도 하다. 지급 직후 소비 효과는 나타날 수 있지만 재원이 소진된 뒤 무엇이 지역에 남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일회성 지원이 일자리나 관광 기반, 새로운 소득원을 스스로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같은 방식의 지원을 반복하려면 또 다른 재정이 필요하다는 점도 외면하기 어렵다.
우리 속담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지금 울진군에 필요한 것도 속도보다 선택의 무게를 따지는 일인지 모른다. 약 140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방안과 국·도비 매칭사업의 지방비로 투입하는 방안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해야 한다.
140억원이 국·도비를 끌어오는 마중물이 된다면 사업 규모는 자체 재원보다 커질 수 있다. 관광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체류형 관광을 육성하거나 정주 여건을 개선하는 사업도 검토할 수 있다.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드는 사업에 활용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울진에 외부 자금과 사람, 소비를 불러들일 사업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행정의 중요한 과제다.
정책은 단순히 돈을 쓰는 행위가 아니다. 같은 1억원을 투입하더라도 얼마의 부가가치를 만들고 얼마나 많은 외부 재원을 끌어오며 지역에 무엇을 남기는지가 중요하다. 특히 인구 감소와 지역소멸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직면한 지방자치단체라면 재정의 기회비용을 더욱 무겁게 따져야 한다.
물론 미래 투자라는 명분만으로 현재의 어려움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당장 생계가 어려운 주민에게 5년 뒤 관광객 증가나 10년 뒤 성장 가능성을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필요한 계층에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지방정부가 고민해야 할 과제다.
문제는 민생이라는 이름만 붙이면 모든 현금성 정책이 정당화되는 것처럼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지원 대상은 적절한지, 지급 규모는 합리적인지, 소비 진작 효과가 얼마나 지속되는지, 같은 재원을 다른 사업에 투입했을 때 얻을 편익은 무엇인지 객관적인 자료로 설명해야 한다. 140억원이라는 재정 규모에 걸맞은 검증이 따라야 한다.
특히 주민이 당장 체감하는 정책은 정치적으로 주목받기 쉽다. 성과가 빠르게 드러나고 정책 수혜자도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앞의 호응이 정책의 타당성을 대신할 수는 없다. 단기적인 인기와 장기적인 지역 발전이 충돌할 때 어느 쪽에 무게를 둘 것인지는 결국 단체장의 판단과 책임으로 귀결된다.
여기서 더 중요한 문제가 드러난다. 자치단체장은 행정의 최고 책임자다. 잘된 사업의 성과만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무산되거나 지연된 사업의 책임을 의회나 다른 기관, 특정 인사에게 돌리는 태도는 책임 정치와 거리가 멀다. 권한을 가진 만큼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지역에 필요한 사업이 있다면 단체장이 직접 뛰어야 한다. 중앙정부와 경북도, 관계 기관을 찾아가야 한다. 사업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자료로 입증하고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처음 거절당했다면 이유를 분석하고 논리를 보완해야 한다. 두 번째도 안 됐다면 세 번째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행정 책임자가 해야 할 일이다.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누가 막았다”는 주장부터 앞세우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 행정 책임자에게 필요한 것은 책임 소재를 외부에서 찾는 일이 아니라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설득하지 못했다면 왜 설득에 실패했는지, 준비가 부족했다면 무엇이 부족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정치는 핑계를 찾는 자리가 아니다. 특히 단체장에게는 ‘누구 때문에 못 했다’는 설명보다 ‘어떻게 해서라도 해내겠다’는 실행력이 요구된다. 권한은 행사하면서 결과에 대한 책임은 다른 곳으로 돌린다면 군민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행정의 실패나 갈등을 여론전으로 돌파하려는 방식이다. 상대를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책임론을 부각한다고 해서 막힌 사업이 저절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협상 상대를 자극하고 관계를 경직시켜 해결의 문을 더 좁힐 수 있다.
정치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갈등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변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군민에게 돌아간다. 사업은 늦어지고 행정력은 소모된다. 지역사회는 찬반으로 갈린다. 결국 해결해야 할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단체장은 갈등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갈등을 풀어야 하는 사람이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수록 더 많이 만나고 더 오래 설득해야 한다. 자신의 주장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정치적 승패보다 사업의 성사가 우선돼야 한다.
실패한 사업을 두고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왜 결과를 만들지 못했는지를 분석하는 일이다. 행정의 최종 책임자가 계속해서 외부의 반대나 협조 부족만을 원인으로 제시한다면 군민은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그렇다면 단체장의 역할은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리더십은 일이 잘될 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일이 막혔을 때 드러난다. 어려운 사업을 설득하고, 반대하는 상대와 협상하고, 필요한 예산을 확보해 결국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행정 책임자의 능력이다. 책임을 회피하는 정치와 책임을 감당하는 정치는 이 지점에서 갈린다.
울진군의 140억원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현금 지원을 선택한다면 왜 지금 필요한지,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지, 재정 부담은 감당 가능한지를 군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다른 사업에 투자한다면 어떤 성과를 만들고 얼마나 많은 국·도비를 끌어올 수 있는지 제시해야 한다.
‘고기를 나눠주는 것’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 가운데 어느 하나만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려운 시기에는 고기를 나눠줘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지방정부라면 동시에 내일도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바다와 배, 일터를 만드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선택 이후의 책임이다. 정책이 성공하면 성과를 말하고 실패하면 남을 탓하는 방식으로는 책임 행정을 세울 수 없다. 단체장은 권한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 설득도, 조정도, 예산 확보도, 최종적인 결과도 책임져야 한다.
군민이 원하는 것은 책임 공방이 아니라 결과다. 울진의 정치가 누구의 잘못인지를 가리는 데 머물지 않고 무엇을 해냈는지로 평가받는 정치가 돼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