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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축산항 개항, 1924년 아닌 1911년부터 봐야

김효진 기자 입력 2026.08.28 10:22 수정 2026.08.28 10:24

제2차 학술세미나서 개항 시점 재정립 제기
만호성 복원·역사해양문화권 조성 등 재도약 방안 논의


[고향신문=김효진기자] 축산항의 개항 시점을 기존 1924년보다 13년 앞선 1911년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축산항이 단순한 어항을 넘어 근대 해양교통과 어업, 양반문화가 공존했던 역사적 공간인 만큼 이를 역사문화자원으로 되살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축산항 개항 100주년 기념 제2차 학술세미나'가 지난 23일 축산면 노인복지회관에서 열렸다. 김성달 재경축산면민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에서는 축산항의 근대사와 전통문화, 역사문화권 조성 방안 등이 집중 논의됐다.

첫 번째 발표에 나선 김두진 부산영도문화원 사무국장은 '기록으로 다시 보는 축산항-일제강점기 축산항 아카이브'를 통해 개항 시점을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사무국장에 따르면 1911년 축산항에는 부산과 웅기를 연결하는 300t급 여객선이 운항하면서 근대적

인 해상교통이 시작됐으며, 1915년에는 축산과 울릉도를 잇는 항로도 개설됐다.

그는 1924년 축산어업협동조합 설립을 개항 시점으로 보는 기존 관점에 대해 "어업협동조합 설립은 개항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1911년 여객선 취항을 축산항 개항의 실질적인 출발점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축산항은 이후 일본 어부들의 통어업이 활발해지면서 항구 규모를 키웠다. 1919년 대홍수 이후 1927년 축산천 제방이 축조됐고, 1932년께 남·북방파제, 1939년에는 호안시설이 들어서며 근대적인 항구 모습을 갖췄다.

1924년 설치된 축산어업협동조합은 위탁판매와 금융사업, 조난구조 등을 담당하며 지역 어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 사무국장은 이와 함께 김정한 등이 1909년 위산학교 설립운동을 벌이는 등 일제강점기 축산지역의 교육운동과 인물사도 소개했다.

두 번째 발표에서는 축산항의 양반문화와 효행 전통이 조명됐다.

김인현 교수는 '양천세헌록과 정효각 이야기'를 통해 축산지역에 형성된 양반문화와 효행 전통이 지역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양천세헌록에는 신안동김씨 사직서령공파 영해문중에서 대를 이어 효자가 배출된 사실과 포상을 청원한 상소문 등이 담겨 있다. 1830년부터 1860년까지 효자 표창을 요구하는 상소가 23차례 이어졌으며, 관련 인물들의 교류와 당시 영해지역 사회상을 보여주는 사료로 평가된다.

김 교수는 "축산은 어촌이었지만 수군만호가 존재하면서 양반문화가 함께 발달한 독특한 지역"이라며 통일신라시대 영양남씨 시조의 발상지, 1382년 왜구에 대응해 축조한 축산성, 정효각과 양천세헌록 등을 대표적인 역사문화자원으로 제시했다.

이어 축산항을 중심으로 어업문화와 군사역사, 양반문화를 아우르는 '역사해양문화권' 조성 가능성도 제시했다.

토론에서는 축산 만호성 복원과 역사문화관광 활성화 방안이 제안됐다. 원형 복원이 당장 어렵다면 역사교육과 관광을 위한 '미니 만호성'을 조성하는 방안도 나왔다.

참석자들은 축산항의 개항 시점을 1911년으로 재정립하는 데 의견을 모으는 한편, 쇠락한 축산항을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는 축산항의 100년 역사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근대 해양교통과 어업문화, 만호성의 군사적 역사, 양반문화와 효행 전통을 하나로 묶어 새로운 역사문화자원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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