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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덕의 원전유치 과정에서도 "영덕군민의 87%가 찬성했다"는 숫자가 반복적으로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숫자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차분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인다. 설문대상자 1,404명 중 87%는 영덕군민 전체의 찬성률이 아니다. 유치찬성 측이 주도한 여론조사에 응답한 일부 표본 가운데 나타난 결과일 뿐이다. 표본조사는 사회 여론을 참고하기 위한 통계적 방법일 뿐 전체 주민의 의사를 확정하는 정당한 절차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어느새 이 숫자는 "영덕의 전 군민 87%가 원전을 찬성했다"는 하나의 사실처럼 소비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사회적 리셋증후군이 시작된다. 숫자는 남고 과정은 사라진다. 왜 이런 조사가 이루어졌는지, 조사 대상은 누구였는지, 질문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행정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반대 의견은 충분히 전달될 수 있었는지와 같은 중요한 질문들은 모두 지워진다. 사람들은 맥락을 기억하기보다 결과만 기억한다.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토론과 숙의의 과정은 사라지고 단 하나의 숫자만 남는다. 더 큰 문제는 과거의 역사마저 리셋하려는 태도다.
영덕은 오랫동안 원전을 둘러싸고 깊은 사회적 갈등을 겪어 왔다. 주민들 사이에는 찬성과 반대가 공존했고 국가 정책의 변화 속에서 지역은 수많은 혼란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생긴 상처와 불신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다.
우리는 지난해 엄청난 산불의 아픔까지 겪었다. 아직 회복조차 하지 못했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무너진 일상을 회복시켜 줄 국가의 책임과 지속 가능한 재건이다. 그러나, 원전을 철회했던 사실조차 망각하게 하고 원전을 둘러싼 모든 과정을 초기화한 채 숫자 하나만으로 지역의 미래를 서둘러 결정하려는 위험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87% 찬성했다는 저 숫자가 어떤 과정에서 만들어졌는지 여론을 은밀히 움직이는 도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민주주의의 리셋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은 기억을 잃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잃는 것이다. 재난의 상처를 다른 사업으로 덮는다고 그 아픔으로 인한 분노가 사라지지 않는다. 지역민들이 어이없이 당했던 산불재난의 피해 회복은 국가책무이고 원전건설은 주민의 충분한 동의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 별도로 판단해야 할 정책인 것이다. 산불피해 기억을 지운 채 원전으로 지역경제를 치유하겠다는 논리는 회복이 아니라 책임 전가이며 공동체의 또 다른 갈등으로 덮으려는 위험한 리셋일 뿐이다.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 절차가 공정해야 결과도 존중받을 수 있다. 아무리 높은 찬성률이 제시되더라도 그 과정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면 사회적 갈등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숫자는 갈등을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더구나 원전은 단순한 개발사업이 아니다. 수십 년, 길게는 100년 이상 지역의 환경과 경제, 안전, 재산권, 그리고 다음 세대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국가적 시설이다. 이처럼 중대한 사안을 단 한 번의 여론조사 결과만으로 전체 주민의 총의라고 단정하는 것은 민주적 정당성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보기 어렵다. 행정이 정말 주민의 뜻을 존중한다면 여론조사 뒤에 숨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모든 군민에게 동일한 권리를 보장하는 주민투표를 제안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한다. 주민투표는 찬성하는 사람에게도 반대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은 한 표를 보장한다. 누구도 대신 결정하지 않고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투명하고 공정한 주민수용성의 확인 절차가 아닐까. 원전이 정말 다수 군민의 뜻이라면 주민투표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주민투표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질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가장 현명한 길이다.
리셋증후군은 개인에게는 삶의 방향을 잃게 하고 공동체에는 기억을 잃게 만든다. 침묵하거나 기억을 잃은 사회는 같은 갈등을 반복하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민주주의는 기억 위에서 성장한다. 과거의 절차를 돌아보고 현재를 검증하며 미래를 함께 결정하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영덕이 지금 필요한 것은 주민 모두가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 절차와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성숙한 민주주의다. 진정한 주민 수용성은 87%라는 숫자에서 시작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 모든 군민이 동등하게 참여하고 스스로 선택한 결과를 함께 책임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