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오피니언 칼럼

[금요칼럼] 우리는 왜 해마다 다시 여행을 꿈꾸는가?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6.01.30 11:34 수정 2026.01.30 11:35

장 빈(빈에듀컬처/갤러리빈 대표, 방송인/유튜브 크리에이터)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같은 질문 앞에 선다. 올해는 어디로 갈 것인가. 달력이 바뀌는 순간, 여행은 이미 계획이 아니라 상상으로 시작된다. 일정표를 채우기 전, 마음속에서 먼저 길을 떠난다. 여행은 늘 미래를 향한 기대의 언어였고 일상을 견디게 하는 작은 약속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여행의 방식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멀리 가는 것이 목표였던 시대에서, 오래 머무는 것이 중요한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한 나라를 찍고 돌아오는 여행보다, 한 도시를 천천히 걷는 여행이 선호된다. '어디를 갔는가'보다 '어떻게 머물렀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여행의 가치는 이동의 거리보다 체류의 깊이로 측정되기 시작했다.
 

기술의 변화도 이 흐름을 가속한다. AI 기반 일정 추천, 개인 취향을 반영한 숙소 선택, 실시간 번역과 길 안내까지 여행은 점점 더 효율적이고 정교해지고 있다. 불확실성과 시행착오가 줄어든 만큼 여행자는 더 이상 '헤매는 관광객'이 아니라 '선택하는 생활자'에 가까워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조용한 장소, 더 느린 풍경을 찾는다. 기술이 편리함을 맡아줄수록 인간은 감각과 사유에 더 집중하게 된다. 이런 변화 속에서 여행은 소비재가 아니라 하나의 태도로 읽힌다. 휴가를 쓰는 방식, 머무는 시간의 길이, 숙소와 식당을 고르는 기준까지 모두 그 사람의 삶의 리듬을 드러낸다. 여행은 점점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삶을 조율하는 하나의 장치가 되고 있다.
 

국내 여행지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울은 빠른 도시이면서도 한 발짝만 벗어나면 시간을 품은 공간들이 숨어 있다. 부산은 바다를 앞에 두고 삶의 굴곡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도시다. 제주는 여전히 사람을 낮추고 청정한 자연 앞에 서게 만든다. 속초는 산과 바다가 맞닿아 있어 오르는 삶과 내려오는 삶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대구는 묵묵하다. 화려하진 않지만 오래 견뎌온 시간의 밀도가 있다. 이 도시들의 공통점은 '설명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신 질문을 건넨다. 지금의 삶은 너무 빠르지 않은가. 너무 많은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여행의 변화는 곧 삶의 변화와 닮아 있다. 성장과 확장을 향해 달리던 시기에서 균형과 회복을 돌아보는 시기로. 많은 것을 소유하는 삶에서 감당 가능한 하루를 선택하는 삶으로. 여행은 늘 시대의 욕망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거울이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는 여행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여행은 세상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보기 위한 일이다." 이 문장은 지금의 여행 풍경과도 정확히 겹친다. 우리가 해마다 다시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분명하다. 낯선 곳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익숙해진 삶에서 잠시 물러서기 위해서다. 다른 풍경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같은 일상을 다른 질문으로 바라보고 싶어서다. 그래서 여행은 이동이지만 동시에 멈춤이다. 속도를 늦추고 방향을 점검하고 다시 걸어갈 힘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올해는 개인적으로도 여행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남편이 환갑을 맞는다. 숫자는 가볍게 지나갈 수 있지만 그 숫자에 담긴 시간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멀지 않은 곳이라도 가족과 함께 잠시 떠나볼 생각이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괜찮다.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맛집에서 식사하고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아마 그래서 우리는 늘 해마다 또다시 여행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어디로 가느냐보다 지금 이 삶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기 위해서.



저작권자 고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