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크고 작은 재난은 서민들에게는 엄청난 삶의 고통을 경험하게 해준다. 큰 산불이 그렇고 수해가 늘 그랬다. 지금도 우리 지역민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어느 농촌에도 활동하는 시민은 존재한다. 그 존재를 믿고 내가 살아가는 농촌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사회적 합의와 갈등 완화, 또는 정부와 기업에 대한 감시와 견제, 새로운 사회운영원리 창출 등의 의미있는 이미지를 그려보며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여기의 잔상들을 떠올려 보았다.
고통을 받고 지내고 있는 이 시국에 축제를 하느냐, 마느냐. 나는 정말 억울하다, 억울해 외치느냐 침묵하느냐. 재난을 당하지 않고서 당신이 감히 그 말 할 자격이 있느냐, 험악한 이곳에서 내가 살아갈 가치가 있느냐. 에라, 떠나버리겠다. 무수한 지리멸렬함들이 뒤통수를 때리기도 한다.
우리가 잠든 사이 들이닥친 사회적 재난은 인간관계마저 단절시킨다. 물질적 과욕에 눈이 멀어 재난민 대상의 보상을 노리는 눈꼴사나운 작태가 노골적으로 벌어지기도 한다. 헐벗은 이웃이 받아야 할 몫을 약삭빠르게 채가는 건 뻔뻔함의 기본이고 같이 화마를 당한 처지에 외지인이라는 이유로 마을 구성원으로 정착하려는 것조차 바리케이트를 치는 마을의 하수들이 아직도 있다. 공개를 해버리자니 좀비같이 더 달려들 군상이라 입을 열지 못하겠단다. 참으로 답답할 지경이라 신문고라도 만들어달라 할 참이란다. 마을 정서로 벌어지는 사람 관계의 재난은 마을 현장의 비민주적인 조직문화, 지속가능성 위기로 지역의 자생력을 서서히 말살시키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기회의 부족 때문일까. 사회적 지능의 결핍, 낮은 자존감 때문일까. 사회적 인연의 통로를 넓히는 해결방법은 없는 것일까. 당당한 시민사회를 나는 기도한다. 내가 이 지역에서 목소리를 내도 안전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중받는 경험을 하게 해야 한다. 또, 반대의 목소리가 클 때 내가 혼자가 아니고 공동의 연대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함께 당한 재난이 서로를 향해 상처를 주는 원인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때로는 사람이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치유가 되기도 하고 기적이 되기도 하지 않는가.
재난 이후 피해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해 일상의 회복에 매우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큰 어려움을 겪은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이번 대형산불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국가 및 지자체를 비롯한 관계기관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따뜻하게 경청해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