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민생지원금 부결 이후 벌어진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제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울진군정을 이끌고 그 결과에 최종적으로 책임져야 할 사람은 군수인가, 군의장인가.
민생지원금 부결 이후 울진 곳곳에는 군의회를 규탄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처음 몇 장씩 늘어난 것이 아니다. 짧은 기간에 지역 곳곳을 뒤덮을 정도로 많은 현수막이 등장했다.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군민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긴다.
이 많은 현수막은 누가 기획하고 제작했는가. 비용은 누가 부담했는가. 여러 사람이 각자 판단해 동시에 현수막을 내건 것인가. 아니면 이를 연결하고 움직이는 구심점이 있는 것인가.
상당수 현수막이 한꺼번에 제작됐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제작 수량과 비용은 확인이 필요하다. 게시자 명칭이나 연락처 등 법정 표시사항을 갖추지 않은 현수막이 있다면 행정기관이 적법 여부를 확인하고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특히 일부 현수막의 원색적인 문구가 전국 언론에 알려지면서 울진의 지역 이미지까지 영향을 받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민생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는 목적과 별개로 이런 방식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는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이미 알릴 만큼 알렸다. 군민 대부분이 민생지원금 부결과 이를 둘러싼 갈등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현수막의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차분하게 따져봐야 한다.
가장 먼저 따져볼 것은 책임이다.
민생지원금 부결 이후 책임의 화살은 사실상 군의회로 집중됐다. 그렇다면 거꾸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울진군의 모든 책임을 군의회가 져야 한다면 울진군정의 책임자는 군의장인가.
지방자치에서 군수와 군의회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
군수는 울진군 행정을 총괄하는 집행기관의 책임자다. 정책과 사업을 추진하고 예산안을 편성해 의회에 제출한다. 군의회는 이를 심의하고 감시하며 견제한다. 예산안을 심의해 삭감하거나 수정하는 것도 의회에 부여된 권한이다.
그렇다면 군수가 추진한 사업이 의회에서 제동이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그 결과의 모든 책임을 의회에 돌리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건물을 짓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시행자가 사업을 추진하고 감리단은 설계와 기준에 따라 공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살핀다. 설계에 문제가 있거나 공사가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감리단이 공사를 중지시켰다고 하자.
그때 모든 책임을 감리단에 물을 수 있는가.
먼저 따져야 할 것은 감리단이 왜 공사를 중단시켰느냐다. 감리 판단이 잘못됐다면 감리단이 책임져야 한다. 반대로 사업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면 시행자가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시행자가 추진하는 일이니 감리단은 무조건 승인해야 한다는 논리라면 애초에 감리단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군정도 다르지 않다.
군수가 추진하는 사업을 군의회가 무조건 통과시켜야 한다면 감시와 견제기관으로서 의회가 존재할 이유가 무엇인가. 반대로 군의회가 합리적 근거 없이 사업을 막았다면 의회는 그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이번 사안을 단순히 '지원금을 막은 군의회'라는 한 문장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집행부는 왜 이 사업을 추진했는지, 재원과 효과는 충분히 검토했는지 설명해야 한다. 의회 역시 왜 예산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군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서 다시 물어야 한다.
울진군정의 최종 책임자는 누구인가.
다른 지역에서 주요 정책이 무산되거나 행정에 문제가 생겼을 때 시장이나 군수가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지방정부의 행정을 총괄하고 정책을 추진하는 책임이 단체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의회가 견제했다고 해서 집행기관의 책임까지 의회로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군수에게는 행정권과 사업 추진 권한이 있고 그에 따른 정치적·행정적 책임이 따른다. 군의회에는 감시와 견제 권한이 있고 그 판단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
권한이 다르면 책임도 다르다.
그런데 민생지원금 부결 이후 울진의 모습을 보면 이 구분이 흐려진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모든 비판과 책임이 군의회로 향하고 군정의 최종 책임을 져야 할 집행부의 책임은 상대적으로 가려진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책임을 묻는다면 양쪽 모두에게 물어야 한다.
군수에게는 왜 의회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정책과 예산안을 만들지 못했는지 물어야 한다. 군의회에는 왜 부결했으며 그 판단이 군민 전체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보는지 물어야 한다.
그것이 책임 있는 지방자치다.
현수막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군의회를 비판하는 것은 자유다. 민생지원금을 요구하는 것도 군민의 권리다. 그러나 특정한 방향의 현수막이 짧은 기간 대량으로 등장하고 시위가 장기간 이어진다면 그 과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궁금해하는 것 역시 자연스럽다.
만약 군민들이 자발적으로 비용을 모아 현수막을 제작했다면 그렇게 밝히면 된다. 사회단체가 자체 예산으로 진행했다면 어느 단체가 어떤 절차를 거쳐 추진했는지 공개하면 된다. 누군가 후원했다면 공개할 수 있는 범위에서 자금 조성 과정과 집행 내역을 밝히는 것이 불필요한 의혹을 없애는 길이다.
행정도 마찬가지다.
불법 현수막이라면 내용이 군수를 지지하든 군의회를 비판하든 같은 기준으로 처리해야 한다. 적법한 현수막이라면 정치적 내용과 관계없이 보호받아야 한다.
행정은 어느 편의 주장이 옳은지를 판단하는 곳이 아니다. 법과 원칙을 공정하게 적용하는 곳이다.
지금 울진에 필요한 것도 바로 그 원칙이다.
현수막을 많이 건다고 그것이 곧 울진군민 전체의 여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의 의견이 크게 보일 수 있고 조직되지 않은 다수 또는 소수의 의견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소수의 의견도 모이면 다수가 될 수 있다. 다만 그들에게 조직적으로 움직일 구심점이 없을 뿐일 수도 있다.
그래서 여론은 숫자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한쪽 주장만 거리를 뒤덮고 다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지역사회는 겉으로는 조용해질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생각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말하지 못한 생각은 안으로 쌓인다.
그것이 오히려 지역사회의 갈등을 더 깊게 만들 수 있다.
울진을 위한 행동이라면 이제는 한쪽의 목소리를 더 크게 만드는 것보다 서로 다른 목소리를 듣는 일이 필요하다. 장기간 이어진 현수막도 정리할 시점을 고민해야 한다. 게시와 시위에 들어간 비용 역시 가능한 범위에서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군수와 군의회 모두 자신의 권한만 말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책임부터 설명해야 한다.
군의회가 잘못 판단했다면 군의회가 책임져야 한다. 집행부의 정책 설계와 추진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군수가 책임져야 한다. 견제기관이 반대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책임을 견제기관에 돌린다면 지방자치의 기본 구조 자체가 무너진다.
감리단이 공사를 중지시켰다고 시행자의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
울진군의회가 예산을 부결했다고 울진군정을 이끄는 군수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지금 울진이 물어야 할 질문은 단순히 "누가 민생지원금을 막았는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누가 정책을 만들었는가."
"누가 충분히 설득했는가."
"누가 그것을 심의했는가."
"각자는 자신의 권한에 맞는 책임을 지고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울진군정의 최종 책임자는 과연 누구인가.
그 답을 군의회 책임론으로만 대신해서는 안 된다. 군수는 군수의 책임을, 군의회는 군의회의 책임을 군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
울진의 미래는 어느 한쪽의 목소리를 없애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찬성과 반대가 함께 말하고, 행정과 의회가 각자의 책임을 인정하며, 군민이 사실과 근거를 토대로 판단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은 울진의 약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순간 울진의 민주주의는 약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