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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실패를 벌주는 행정에 도전은 없다

박문희 기자 입력 2026.09.25 10:28 수정 2026.09.25 13:32

울진군 공무원이 달라져야 한다면 먼저 지휘가 달라져야 한다
일 시켜놓고 결과만 묻는 조직에서는 누구도 앞장서지 않는다
적재적소 인사·도전 보호·성과 인정이 군정 변화의 출발점


본 기자는 종종 이순신의 수군과 원균의 수군을 이야기한다. 병사가 달랐던 것도, 배가 달랐던 것도 아니다. 달랐던 것은 지휘였다. 같은 조직도 누가 어떻게 이끄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

울진군 행정도 마찬가지다.

울진군 공무원이 다른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보다 유독 능력이 부족하다고 볼 근거는 없다. 공직사회 구성원의 능력은 어느 지자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 차이를 만드는 것은 군정의 방향이고 인사이며 지휘하는 사람의 능력이다.

그런데 행정이 기대만큼 움직이지 않을 때마다 가장 손쉬운 해답은 늘 공무원 탓이다. “적극성이 없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다”, “시키는 일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연 공무원만의 문제인가.

새로운 일을 했다가 잘못되면 책임부터 묻고, 공모사업에 도전했다가 떨어지면 능력을 의심받고, 익숙한 일을 무난하게 처리한 사람과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사업에 뛰어든 사람을 똑같이 평가한다면 누가 먼저 손을 들겠는가.

가만히 있으면 적어도 실패하지 않는다. 시키는 일만 하면 문책받을 가능성도 줄어든다. 이런 조직에서 도전을 주문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행정의 혁신을 원한다면 공무원에게 “적극적으로 일하라”고 말하기 전에 적극적으로 일해도 되는 환경부터 만들어줘야 한다.

울진군이 가장 먼저 손봐야 할 것은 인사다.

사람을 자리에 맞춰야지 자리에 사람을 억지로 끼워 맞춰서는 안 된다. 관광을 잘 아는 공무원은 관광 분야에서 능력을 키우게 해야 한다. 공모사업과 국·도비 확보에 강점이 있는 직원은 그 능력을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농·어업과 산림, 원전, 에너지, 복지처럼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도 마찬가지다.

전문성을 쌓을 만하면 자리를 옮기고, 새로운 업무를 익힐 만하면 또 이동하는 인사가 반복되면 행정에 노하우가 축적되기 어렵다.

인사가 단순한 자리 이동에 그쳐서는 안 된다. 누구를 어디에 배치해야 군정 전체의 성과를 높일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인사권자의 책임이다.

공모사업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져야 한다.

공모에 나서는 순간 담당자는 이미 상당한 부담을 안는다. 사업을 발굴하고 자료를 만들고 중앙부처와 경북도를 찾아다녀야 한다. 수많은 검토와 협의를 거쳐도 선정되지 않을 수 있다.

그 결과만 놓고 “왜 떨어졌느냐”고 묻는다면 다음 공모에서는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는다.

물론 준비가 부실했거나 충분한 검토 없이 사업을 추진했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철저하게 준비하고 정상적인 절차를 밟은 도전까지 실패라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묻는다면 조직은 결국 안전한 선택만 하게 된다.

울진군은 공모사업을 성공과 실패 두 가지로만 나눠 평가해서는 안 된다.

탈락한 사업도 왜 탈락했는지 기록해야 한다.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해 다음 공모에 다시 도전해야 한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경험과 자료가 남도록 해야 한다. 한번의 실패를 폐기물이 아니라 행정의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정책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업은 없다. 작은 규모로 먼저 시도하고 문제점을 찾은 뒤 보완하면 된다. 효과가 확인되면 확대하고 부족하면 수정하면 된다.

그것이 행정의 정상적인 발전 과정이다.

그런데 첫 시도부터 완벽한 성과를 요구하면 담당자는 검증된 사업만 찾게 된다. 다른 지자체가 성공한 사업을 가져와 이름만 바꾸는 행정이 반복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게 해서는 울진만의 정책이 나오기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군수와 간부 공무원의 태도다.

공무원에게 새로운 일을 주문했다면 그에 따른 부담도 함께 져야 한다. 성과가 나면 윗사람의 치적이 되고 문제가 생기면 실무자의 책임이 되는 조직에서는 누구도 창의적으로 일하지 않는다.

책임 있는 리더라면 반대여야 한다.

잘한 일은 담당 공무원의 공으로 돌리고, 충분히 준비했음에도 문제가 생겼다면 지휘하는 사람이 먼저 책임을 나눠 져야 한다. 그래야 직원이 믿고 움직인다.

간부의 역할도 결재판에 도장을 찍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실무자가 어려움에 부딪히면 해결해주고, 부서 간 이해가 충돌하면 조정하며, 외부 기관과 협의가 필요하면 길을 열어주는 것이 간부의 역할이다.

직원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지시가 아니다. 신뢰다.

울진군에는 앞으로 풀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인구 감소, 지역경제, 관광, 농·어업, 원전과 에너지, 정주 여건 개선까지 어느 하나 과거 방식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

새로운 해법을 찾으려면 누군가는 먼저 시도해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 가장 먼저 돌아오는 것이 감사 걱정과 문책 부담이라면 울진군이 아무리 혁신을 외쳐도 행정은 움직이지 않는다.

실수하지 않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정이야말로 급변하는 시대에는 가장 위험한 행정일 수 있다.
울진군이 원하는 공무원이 책임을 피하는 공무원인지, 새로운 일을 만드는 공무원인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도전을 원한다면 도전한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 성과를 원한다면 성과를 낸 사람을 인정해야 한다. 전문성을 원한다면 전문성을 키울 시간을 줘야 한다. 책임을 요구한다면 권한도 함께 줘야 한다.

공직사회 분위기는 구호로 바뀌지 않는다.

인사가 바뀌고 평가가 바뀌고 지휘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이순신의 수군과 원균의 수군이 달랐던 것이 병사 때문만은 아니었듯 울진군 행정의 성패 역시 공무원 개인에게만 물을 일은 아니다.

같은 공무원을 데리고 어떤 조직을 만드는가.

결국 그것이 지휘자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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