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의 이른바 ‘에너지연금’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군수는 주려고 하는데 군의회가 막았다는 구도가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과연 군의회만 비난할 일인지부터 따져야 한다.
과거 에너지연금 지급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을 때는 분위기가 달랐다. “기다려라”, “떼쓰지 마라”, “그렇게 먹고살기 힘드냐”는 비난까지 나왔다. 당시에는 지급 요구 자체를 곱지 않게 바라보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뒤집혔다. 민생지원금이라는 이름에서 에너지연금으로 바뀐 지원책을 두고 이제는 한목소리로 달라고 아우성이다. 같은 성격의 지원을 놓고 시기와 추진 주체에 따라 여론의 잣대가 달라졌다면 그 이유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역에는 “군수는 주려고 하는데 군의회가 막았다”는 취지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군의회를 겨냥한 강도 높은 현수막도 일사불란하게 걸리고 있다. 마치 군의회가 주민 몫의 돈을 빼앗기라도 한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번 사안의 발단은 따로 있다. 군의회와 협의를 거쳐야 하는 사업을 군수가 충분한 사전 논의 없이 먼저 언론에 알린 것이 시작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군수 개인이 지급 방침을 밝힌 것이지, 울진군의 모든 행정 절차가 끝난 확정 사업이 아니었다. 예산이 수반되는 정책은 군수의 말 한마디로 시행되는 것이 아니다. 군의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야 한다.
더구나 에너지연금은 일회성 사업이 아니다. 계속 지급하겠다는 성격을 가진 사업이라면 재원 마련 방안이 핵심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예산이 필요한지, 어떤 재원으로 충당할지, 지급 기준과 대상은 어떻게 정할지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한다.
이런 사업일수록 집행부와 의회의 사전 협의가 중요하다. 최소한 구두 협의라도 거쳐 사업 추진 가능성을 점검하고 일정한 공감대를 만든 뒤 외부에 알리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의회와 충분히 논의하기 전에 언론과 주민에게 먼저 알렸다. 이후 의회가 제동을 걸자 곧바로 “군의회가 막았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이런 방식이라면 군의회는 처음부터 선택지가 좁아진다. 찬성하면 집행부 정책을 따라가는 것이고, 반대하면 주민 지원을 막는 세력으로 몰릴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의회를 정치적으로 고립시키는 구도가 만들어진 셈이다.
정책은 여론몰이로 통과시키는 것이 아니다. 특히 지속적으로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은 인기보다 지속 가능성을 먼저 따져야 한다.
사업의 구체적인 대안과 재원 마련 계획이 충분하지 않았다면 군의회가 이를 문제 삼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지방의회의 역할이다. 집행부가 내놓은 정책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곳이 의회는 아니다.
군의회는 예산을 심의하고 집행부를 감시·견제해야 한다. 주민에게 당장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 해도 재정 부담과 사업의 타당성을 따져야 한다.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직무를 제대로 수행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기본적인 의회 기능조차 외면한 채 모든 책임을 군의회에 씌우는 분위기가 강하다. 사업 준비가 충분했는지, 의회와 제대로 협의했는지보다 누가 찬성했고 누가 반대했는지만 부각되고 있다.
황 군수가 지지자들과 군민들에게 밴드와 문자 등을 통해 에너지연금 추진 내용을 알린 과정도 되짚어봐야 한다. 의회 심의가 끝나기도 전에 지급 가능성을 주민에게 먼저 알렸다면 기대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 상태에서 의회가 제동을 걸면 비난이 의회로 향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그렇다면 정책이 무산되거나 늦어진 책임 역시 의회에만 물을 수 없다.
찬성한 무소속 의원 3명이 칭송받는 상황도 아이러니하다. 지방의원의 책무는 주민에게 인기 있는 정책에 무조건 찬성하는 데 있지 않다.
재원이 충분한지, 지속 가능한지, 절차가 적절했는지를 따지는 것이 의원의 책임이다. 이런 검토 없이 찬성했다면 오히려 의회의 본래 역할을 다했는지 물어야 한다.
이번 사안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충분한 준비와 협의 없이 정책을 먼저 알리고, 이후 갈등이 생기자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는 방식은 정상적인 정책 추진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지역사회 전체가 갈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낯뜨거운 표현의 현수막까지 등장하며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지원금 하나를 놓고 울진군민 전체가 외부의 웃음거리가 되는 상황까지 간다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는 감정을 걷어내야 한다. 누가 돈을 준다고 했고 누가 막았느냐만 볼 일이 아니다.
군수가 의회와 충분히 협의했는지, 사업의 재원 계획은 있었는지, 의회에 구체적인 자료를 제출했는지, 계속사업으로 감당 가능한 정책이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그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책임을 물어도 늦지 않다. 현수막 몇 장과 일방적인 주장으로 군의회를 몰아세우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다.
울진군민도 이제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누가 주민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절차를 무시했는지, 누가 자신의 역할을 다했는지, 또 누가 갈등을 키웠는지 따져볼 때다.
에너지연금 논란의 책임은 목소리가 큰 쪽이 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과 절차가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