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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란의병 전적지(소천면 현동길 39-27) |
이날 추모제에는 최기영 봉화군수를 비롯한 지역 기관단체장, 전사자 유족, 지역 학생 등 250여 명이 참예하여 유교식 제례 절차에 따라 의병들의 넋을 달래고 충의를 기렸다.
봉화 임란의병은 1592년 임진왜란 발발 당시 지역 유생들을 중심으로 결성됐다. 당시 600여 명의 뜻있는 민초들이 창의(倡義)하여 내성(봉화의 옛 이름)의병대를 조직, 류종개(柳宗介)를 의병장에 추대하고 부장(副將)에 임흘(任屹), 참모장에 김인상(金麟祥)을 임명하는 등 체계적인 진용을 갖췄다.
의병대는 왜적이 강릉을 거쳐 삼척과 울진에서 내륙으로 침략하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울진·태백·안동을 잇는 요충지인 화장산 노룻재(현 36번 국도)에 배수진을 쳤다. 전투 첫날, 철저한 매복 작전으로 왜군을 대파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사흘 뒤, 신무기와 정예 병력 3,600여 명으로 무장한 왜군이 보복 전에 나섰다. 수적으로 압도적인 열세 속에서도 600여 의병은 퇴로를 끊고 결사항전했으나, 끝내 전원 장렬히 전사하며 산화했다. 비록 전투는 비극으로 끝났으나 의병대의 격렬한 저항은 왜군의 기세를 꺾는 계기가 됐다.
류종개 대장이 전사한 후, 임흘 부장은 잔여 의병을 규합하여 대장 직을 맡아 왜군의 재침을 저지했다. 의병대의 집요한 저항에 조우한 왜군들은 내륙 중심부인 안동 진격을 포기하고 울진과 영양 방향으로 후퇴했다. 이후 임흘 대장은 문경 당교 전투 등에서도 큰 전공을 세워 '안동열읍향병대장'에 추대됐다. 나라에서는 그의 공훈을 높이 평가해 정운원종공신 2등 훈호와 함께 전생서 참봉, 동몽교관을 제수했다. 임 대장은 노후에 안동 도산 온혜에 '취규정'을 지어 후학 양성과 학문 연구에 전념하며 수많은 저작을 남겼다.
이날 제례에 참석한 유족과 관계자들은 노룻재 전적지와 의병들의 공훈이 국가 현충시설로 지정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있다.
추모제에 참석한 봉화군 관계자는 "노룻재 전투는 수적 열세 속에서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숭고한 호국정신의 결정체"라며, "이번 추모제를 통해 의병들의 거룩한 뜻을 군민과 후손들에게 널리 알리고, 전적지의 현충시설 지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자료제공: 전,봉화임란의병유족회장 임충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