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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기고] 한 사발의 달빛에 차와 시, 음악을 담다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6.09.11 11:02 수정 2026.09.11 11:06

영덕차인회가 동궁사에서 펼친 `一碗明月`의 풍류


'一碗明月(일완명월)', 한 사발의 밝은 달. 손으로 직접 잡을 수 없는 달이지만, 차를 우려내는 이의 정성과 이를 마시는 이의 마음이 만나면 달빛은 한 사발의 차가 되어 가슴 깊은 곳으로 스며든다. 차 한 사발을 앞에 두고 은은한 차향 속에서 이웃을 만나며, 시와 음악에 기대어 잠시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 어쩌면 이것이 '일완명월'이라는 이름이 품은 진정한 풍류일 것이다.
 

지난 9월 5일 저녁, 고즈넉한 산사 동궁사에서 열린 영덕차인회의 다도 행사는 그 이름처럼 차와 달빛, 사람과 음악이 한데 어우러진 따뜻한 문화의 장이었다. 지역 차인들과 주민들이 함께 모여 차를 나누고 음악을 들으며 온정을 더했다. 화려함 대신 정갈함으로 채워졌고, 규모는 작았지만 여운은 깊었다. 그 중심에는 송명숙 영덕차인회장과 회원들의 지극한 정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 차 한 사발에 담긴 전통과 인연의 온기
 

영덕다례문화원은 지난 2009년 4월 (사)한국차인연합회 영덕지회로 승인받은 이후, 전통 다례를 생활 속에 접목하고 계승하기 위한 교육을 꾸준히 이어왔다. 이곳에서 다례를 수료한 이들이 뜻을 모아 결성한 단체가 바로 영덕차인회다. 영덕차인회는 단순히 차를 즐기는 모임에 그치지 않고, 차를 통해 겸손을 익히고 상대를 배려하며 정을 나누는 순수 차문화 봉사단체로서의 삶을 실천해 오고 있다.
 

차 한 사발을 우려내는 과정에는 기다림의 미학이 담겨 있다. 물을 데우고 찻잎이 느리게 우러나기를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상대를 향한 배려와 예(禮)를 배운다. 이번 행사 역시 차 한 사발을 매개로 하여 전통의 가치와 사람의 온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이러한 영덕 차문화의 중심에는 영덕다례문화원을 이끌어온 한형철 원장의 깊은 가르침과 열정이 있다. 한 원장에게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사람을 대하는 태도이자 삶의 도정(道程)이었다. 서두름 없이 차분하게 차를 우려내듯 제자들을 이끌어온 그의 가르침은 제자들의 손길을 통해 지역 봉사와 차문화 교류라는 형태로 세상에 차향처럼 조용히 퍼져나가고 있다. 나아가 영덕차인회는 포항·울진·안동 등 인근 지역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영덕의 정체성과 전통의 멋을 넓히는 데 앞장서고 있다.

■ 儉而不陋 華而不侈, 그리고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이번 동궁사 행사를 돌이켜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고전의 가르침이 있다. 

 

첫째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즉 "소박하되 누추하지 않고, 아름답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경구다. 화려함보다 정갈함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차문화의 본질이 이날 행사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거창하지 않았으나 정성스런 차와 따뜻한 미소가 있었기에 더없이 품격 있는 자리가 되었다.
 

둘째는 공자가 『논어』에서 강조한 '흥어시 입어례 성어악(興於詩 立於禮 成於樂)'의 가르침이다. 시로 마음을 일으키고, 예로 삶을 바로 세우며, 음악으로 마음을 완성한다는 뜻이다. 

 

이날 2부 순서로 마련된 들꽃예술촌 회원들의 시낭송, 대금·섹소폰·통기타 연주, 그리고 들꽃밴드의 공연은 정적인 차향 위에 동적인 감성을 더해 주었다. 차로 마음을 열고, 예로 거리를 조율하며, 시와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문화적 완성의 순간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좋은 시 한 편, 좋은 차 한 사발, 좋은 음악, 그리고 마음을 나누는 좋은 사람의 가치가 더욱 절실해진다. '일완명월'은 이 모든 삶의 정수를 한자리에 담아낸 결정체였다.

■ 작은 실행이 만드는 큰 문화의 힘

지역의 문화는 거창한 담론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몇 사람이 뜻을 모으고, 정성껏 차를 우려내며, 전통을 배우고 나누는 소박한 실행에서 출발한다. 행사를 주관한 송명숙 회장과 회원들의 정성은 차 한 잔이 어떻게 사람을 모으고, 그 만남이 어떻게 지역의 문화와 품격을 높이는지 잘 보여주었다.
 

'一碗明月'. 차 한 사발에 달빛을 담고, 그 달빛에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담아낸 동궁사의 저녁은 끝났지만, 그날의 차향과 음악, 그리고 정다운 이웃들의 미소는 우리 삶 속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 앞으로도 영덕차인회가 영덕 차문화의 전도사이자 전통문화의 전령사로서 인근 지역과의 아름다운 교류와 여정을 계속 이어가기를 기대하며, 그 귀한 길에 한형철 원장의 가르침과 차인들의 정성이 든든한 밑거름이 되기를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이 형 성 (前 영덕군청 병곡면장·주민복지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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