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오피니언 칼럼

<영덕의 빛과 바람> 이호신 화백의 그림 순례 -9-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6.09.04 10:35 수정 2026.09.04 10:48

9. 창수면 운서산 장육사, 나옹왕사 선명상 치유센터


운서산(雲棲山) 장육사(莊陸寺)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 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청산가(靑山歌)>는 이 땅의 선지식 중에 가장 우리에게 친숙하고 한 번쯤 마음속으로 음미한 나옹(懶翁)스님(1320 ~1376)의 시로 전해 온다. 이 시는 자연의 섭리를 통찰하여 세속의 욕망을 내려놓고 무소유를 통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리의 삶을 노래한 것이다.
 

이 일깨움은 나에게도 와 닫기로 젊은 시절 붓글씨로 써보기도 했고, 법정스님이 머물던 불일암(佛日庵)의 현판에서 보고 감회가 깊었던 추억이다. 마치 스님의 삶을 집약한 시로 읽혔던 것임에.
 

이 시의 주인공인 나옹스님 탄생지와 절(운서산 장육사)을 찾아가는 길은 한 여름의 폭염이지만 청산은 푸르고 흰 구름은 마치 나그네 마음이 되어 흐른다. 먼저 창수면 스님의 생가터를 지나 <나옹선사 교육관>에서 스님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남기신 시문을 음미한다.

나옹의 속명(俗名)은 아원혜(牙元慧), 법명은 혜근(惠勤)이며 법호(法號)가 나옹(懶翁)이다. 선승(禪僧)이기 때문에 법호에 '선사(禪師)' 칭호를 덧붙여 나옹선사(懶翁禪師)라고 부른다. 충숙왕 7년(1320) 2월 24일(음력1월 15일)에 경상도(慶尙道)의 영해(寧海)에서 아버지 아서구(牙瑞具)와 경상도 영산군(靈山郡) 출신 어머니 연일 정씨(延日 鄭氏) 사이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나옹은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21살이 되는 충혜왕 복위 1년(1340)에 공덕산 묘적암(妙寂庵)에 있는 요연 선사(了然 禪師)의 문하에서 출가하였다. 그 후 충목왕 즉위년(1344, 25세)에 양주의 회암사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나옹은 당시 고려 불교계에서 크게 추앙받는 인도 출신 지공대사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충목왕 3년(1347, 28세)에 원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지공과 사제관계를 맺은 후 조국으로 돌아와 선불교를 일신하였고, 고려 공민왕 20년(1371)에는 왕사(王師)로 임명되며 보제존자(普濟尊者)라는 법호를 받았다. 그 후 여주의 신륵사(神勒寺)에서 입적(1376)하였다. 우왕(禑王, 1365~1389) 은 나옹에게 선각(禪覺)이라는 시호를 추존하였고, 영해 출신 대학자 이색(李穡)이 1377년 나옹을 기리는 비문을 썼고 비는 양주군 회암사에 건립 되었다.
 

교육관 2층에는 나옹선사 탄신 700주년 기념을 위한 책들이 놓였는데 그 중 『나옹선사 어록』 (무비 역주, 민족사) 『나옹왕사 법향 드러나다』(현담 엮음)를 참조하며 현장을 순례하기로 한다.

교육관을 나서 <나옹선사 기념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당간지주(幢竿支柱)를 만나니 여기서부터 절터라는 의미이다. 앞개울의 청산교를 건너 일주문을 향해 공원으로 들어선다. 송림이 울울한 우측에 나옹선사상이 우뚝하다. 선사가 든 지팡이는 특별하게 잎이 솟아나 있으니 그가 출가할 때 바위 위에 지팡이를 꽂아놓고 "이 지팡이가 살아 있으면 내가 살아 있고 죽으면 내가 죽은 줄 알아라"는 구전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선사상 앞뒤로 승탑인 부도는 익히 양주 천보산 회암사(檜庵寺)터에서 보든 양식이다. 회암사에는 나옹과 스승 지공, 제자 무학대사(無學大師)의 부도가 산비탈에 나란히 있기로 이 모형을 따른 것이다. 그 옆으로 운휴정이 있고 참선기단 10개는 모두 연잎문양으로 둘렸다. 한편 길손을 위한 돌의자 귀퉁이에도 연꽃 형상을 새긴 것이 특별하다.
 

이어 돌벽에 새긴 석왕가(염불가사 8단계)와 또 다른 돌비석 네 곳에는 나옹의 출생과 청산가, 그리고 수행처( 연경 법원사, 회암사, 공덕산 묘적암, 장육사, 여주 신륵사) 가 사진과 함께 서술되어 있다. 공원이라 수목의 생태도 다양한데 목백일홍, 단풍나무, 라일락 등이 눈에 띈다.

이제 돌아 나와 운서교를 건너니 장육사와 마주한다. 이 만남은 추억과 감회가 크고 깊다. 2006년에 그린 장육사는 외삼촌(김필동)의 혼백을 모신 곳으로 외숙모(서용남)와 참배한 후 그린 것으로 졸저 『가람진경』 (다빈치)에 실렸고, 2016년에 다시 화첩에 담은 후 10년 만에 찾으니 세 번의 해후인 것이다.

현 주지이신 비구니 도겸(道兼)스님과 인사 나누고 가람의 변화와 유물을 살핀다. 장육사는 고려 공민왕 재위 때 나옹왕사가 고향인 이곳 운서산 아래 창건(1355년)하였다고 전한다.
 

대웅전은 조선 중기 건축양식(경북 유형문화재 138호)이다. 내부 삼존불 뒤의 후불탱화 영상회상도(보물 2263호)와 지장탱화(보물 2264호) 는 1764년에 제작되었다. 불교미술사에서 조선시대의 우수한 작품은 거반 영조 때 문화 르네상스 시대에 조성된 것이다. 한편 관음전의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993호)은 한지로 불상을 만들고 금물을 올려 조성한 특이한 불상이다. 특히 보관이 화려한 것으로 태조 4년 (1395년)에 제작되었다.
 

사찰 전경을 그리기 위해 폭염 속에 화첩을 펴는데 스님이 점심으로 별미의 냉면을 주시어 열기를 식혔다.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탬플스테이 현황과 당우(堂宇)의 이름들을 알려주며 예전부터 이 절에서 공부한 이들이 크게 성공해 사회에 기여한 인물들이 많다고 한다.
 

안내소인 연화당과 종무소로 쓰고 있는 이층 누각의 흥원루를 시작으로 종각, 탐진당, 대웅전, 관음전, 산령각, 나옹당, 육화당, 삼륜당, 미유암, 홍연암을 그리는데 홍연암에는 지공화상, 나옹화상, 무학화상의 영정이 걸려있다. 특히 비탈의 돌담과 담장이 아름다운 절로 그랭이기법(맞물린 돌을 위해 깎아서 끼워 넣는 기법)이 자주 눈에 띈다. 절은 세월 따라 또 변모하겠지만 오늘의 장육사를 증언하는 마음으로 붓을 든다.

 

나옹왕사 선명상 치유센터

 


검푸른 기상의 운서산 아래 장육사를 지나 오르면 개울 건너 '나옹왕사 선명상 치유센터'에 이른다. 작년부터 시절인연이 닿아 여러번 숙박한 곳이다. 하지만 예전 영덕군에서 운영하던 '여명'이 새로운 이름으로 탄생했다.
 

지난 7월 22일 개원한 '나옹왕사 선명상 치유센터'는 이곳 출신인 고려 말 나옹왕사의 수행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체류형 전문 치유시설이다. 화두와 간화선을 기반으로 한 1박2일 입문캠프와 집중수행 프로그램을 비롯해 걷기명상, 바다명상, 나옹왕사 수행처 순례 등을 운영한다.
 

불국사·석굴암과 연계한 K-선명상 투어, 공공기관과 기업 대상 치유연수, 지역주민을 위한 마음건강 프로그램도 추진해 전통문화와 웰니스 관광이 결합된 지역 치유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서울 남산 충정사 선명상 치유센터가 시민과 직장인들이 일상 속에서 쉽게 참여하는 도심 생활밀착형 공간이라면, 영덕센터는 자연 속에 머물며 숙박과 집중수행을 경험하는 체류형 센터로 차별화된다. 두 센터는 각각 일상 속 선명상과 전문 수행을 담당하며 선명상 대중화의 거점 역할을 맡는다.

이미 기사(불교신문)를 접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가니 선약한 박희승 센터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이곳 창수출신인 그는 중등시절 장육사 대웅전에서 공부하며 불가의 인연을 맺게 되었고 동국대학교를 나와 조계종 행정직으로 오래 근무했다. 이후 참선공부를 위해 스승을 찾아 수행했다. 그리고 지도법사가 된 후 이곳 근무를 자청한 것이다.
 

그동안 선명상과 수행지도를 인정받은 연유로 센터장이 된 만큼 책임도 크다는 그는 이곳 주민은 물론 모두를 위한 마음치유공간으로 활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명상과 기공운동, 자연건강음식, 그리고 문화, 예술을 통한 힐링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이 곳 전경을 별도로 그리고 싶어 산을 우러러보고 여러 당우들의 동선을 살핀다. 운서산 아래 둥지를 튼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으로 산이 사방으로 둘러싸인 알터에 자리 잡았다. 건물로는 입구의 소소당으로 부터 심검당, 정수당(식당), 운서관(숙소), 송휴정 이 있고, 돌바닥인 수양의 단과 명상홀인 게르(몽골형 집)가 있다. 산길과 계곡을 거슬러 가면 야외모임을 위한 데크가 있으니 앞 계곡의 비경과 탁족(濯足)으로 심신을 씻는 곳이다.
 

이 터전은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에 양 계곡이 만나서는 장육사 앞으로 흘러간다. 따라서 이 물길처럼 모두 나옹선사를 기리고 배우며 깨닫는 도량이요, 안식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이틀을 묵고 떠나려니 길손도 잠시 청산의 물로 흐르고 싶다. 하여 나옹의 시를 읊조리며 산을 내려간다.

"...봄은 가고 가을은 다시 오고 물살 짓는 흐름 속에 가는 날 오는 날이여."
『나옹선사 어록』 민족사(무비 역주) 110쪽



저작권자 고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