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가 나지 않는 책임을 전임자에게 돌리고 지키지 못한 약속에 대한 비판마저 공격으로 막으면서, 주민들이 결국 입을 닫는 고을의 이야기는 권력과 비판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옛날 어느 고을에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새 원님이 나타났다. 그는 전임자가 추진하던 사업을 더 크게 키우고 고을을 이전보다 위대한 곳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주민들의 기대도 컸다. 장터에서는 새 원님이 손대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말까지 돌았다. 새 원님 역시 이런 기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자리에 오른 뒤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사업에는 막대한 돈이 필요했다. 주민을 설득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다른 고을과 협의하거나 오랜 준비를 거쳐야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도 적지 않았다.
새 원님은 외부에서 바라볼 때와 직접 책임져야 할 때의 차이를 깨닫기 시작했다. 문제는 자신의 판단 부족이나 한계를 인정하는 대신 다른 해법을 택했다는 데 있었다.
그는 장터에서 목소리가 큰 측근들을 불러 모았다. 사업이 늦어지는 이유를 묻는 주민들에게 전임 원님이 애초에 잘못 추진한 사업이라고 설명하도록 했다.
이후 장터에서는 전임자 시절 사업에 문제가 많았다는 소문이 잇따랐다. 사업성이 없었다거나 비리가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뚜렷한 근거를 확인한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면서 소문은 점차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성과가 나오면 새 원님의 공으로 돌아갔다. 사업이 지연되거나 예산이 부족하면 전임자 책임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새 원님이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사안도 과거부터 문제가 있던 사업이라는 말로 정리됐다.
또 다른 문제는 새 원님이 취임 전 반드시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공약이었다. 주민들이 약속의 이행 시점을 묻기 시작하자 그는 처음에는 별다른 답을 내놓지 않았다.
질문이 이어지자 이번에도 측근들이 나섰다. 이들은 해당 공약이 꼭 필요한지 되물으며 의미를 축소했다. 과거에는 중요한 약속이라고 강조했던 정책이 어느 순간 없어도 되는 일처럼 바뀌었다.
일부 주민은 의문을 제기했다.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이었다면 처음부터 왜 반드시 하겠다고 약속했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질문에는 답보다 공격이 돌아왔다. 측근들은 비판하는 주민을 향해 “네가 무엇을 아느냐”, “불만이 있으면 직접 해보라”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이후 고을에서는 점차 말이 사라졌다.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해도 공격받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유를 물어도 비난이 이어졌다. 주민들은 굳이 나서서 말을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새 원님은 주민들과 직접 부딪칠 필요도 줄었다.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측근들이 비판자를 상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측근들의 영향력과 목소리는 더 커졌다.
상인도 입을 닫았다. 농부와 선비도 말을 아꼈다. 아이들마저 어른들의 눈치를 살폈다. 겉으로 보기에 고을은 이전보다 조용해졌다.
새 원님은 이를 평화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통치 아래 고을이 안정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 노인은 달리 봤다. 고을이 평화로워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말하기를 포기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 말조차 주변 사람들의 만류를 받아야 했다.
주민들은 결국 하나둘 ‘묵언’에 들어갔다. 말하지 않으면 공격받을 일도 없었다. 질문하지 않으면 갈등도 생기지 않았다. 잘못을 보고도 모른 척하면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고을 전체가 조용해졌지만 문제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주민들의 입이 닫히는 동안 해결되지 않은 일은 계속 쌓였다.
세월이 흐른 뒤 사람들은 이 시기를 ‘모두가 입을 닫아 평화로워 보였으나 아무도 행복하지 않았던 시대’라고 기록했다.
한 이름 없는 기록자는 마지막 장에 이렇게 남겼다.
“원님의 능력은 백성의 입을 막는 데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두려움 없이 입을 열 수 있게 하는 데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