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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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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양 서석지/사진=영양군 제공 |
그동안 ‘1613년에 조성된 것으로 전해진다’는 기록이 있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문서 자료가 부족했던 가운데, 서석지 부속채인 주일재(主一齋)의 상량문에서 조성 시기를 명확하게 밝힌 기록이 발견돼 서석지의 역사적 가치 규명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에도 새로운 근거가 마련됐다.
영양군 산촌생활박물관은 영양군이 추진 중인 「영양 서석지 세계유산 가치 발굴 기초연구 용역」 조사 과정에서 경정(敬亭)의 자양재(紫陽齋)에 보관돼 있던 주일재 상량문 3점을 확인하고 이를 분석한 결과, 서석지의 조성 연대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기록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영양 서석지는 조선 중기 학자인 석문(石門) 정영방(鄭榮邦·1577~1650) 선생이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에 조성한 정원이다. 정영방 선생은 1608년부터 연당에 별서(別墅)를 마련하고 고향인 예천을 오가다 병자호란을 피해 다시 연당에 들어온 뒤 별서 옆에 정자 경정을 짓고 서석지를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포털 등에는 서석지가 1613년 조성된 것으로 전해진다고 기록돼 있었지만, 정확한 조성 시기를 확인할 수 있는 명확한 문헌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번에 확인된 상량문은 1919년 주일재를 중수할 당시 후손들이 선조가 작성한 원래 상량문을 보고 옮겨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자료에는 17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경정과 서석지가 어떻게 관리되고 중수돼 왔는지에 대한 기록도 담겨 있다.
특히 3점의 상량문 가운데 가장 먼저 작성된 상량문은 정영방 선생의 손자인 눌재(訥齋) 정요천(鄭堯天·1639~1700) 선생이 지은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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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양 서석지의 정확한 조성 연대가 기록된 주일재 상량문/사진=영양군 제공 |
이 상량문에는 ‘歲乙酉 鑿斯池名曰瑞石’, 즉 ‘을유년(1645년)에 이 못을 파고 서석지라고 이름 붙였다’는 내용이 명확하게 기록돼 있다.
이는 서석지가 언제 조성됐는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료로 평가된다.
이번 기록 발견으로 그동안 전해져 오던 서석지의 조성 연대에 대한 논란도 사실상 정리될 전망이다. 특히 서석지가 단순히 특정 시기에 한 차례 조성된 정원에 그치지 않고, 이후 후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관리되고 중수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이어왔다는 역사적 과정도 확인됐다.
또한 일각에서 제기됐던 19세기 무렵 정자를 새로 지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 역시 이번 상량문 자료를 통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영양군은 이번 사료 발굴이 서석지의 역사성과 진정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인 만큼, 향후 세계유산 등재 추진 과정에서도 중요한 근거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오도창 영양군수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영양 서석지의 조성 연대는 물론, 19세기에 정자를 새로 지었을 것이라는 일각의 의혹까지 이번 상량문을 통해 명확히 해소됐다”며 “영양 서석지가 국가민속문화유산을 넘어 세계인이 사랑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발견은 단순히 서석지의 조성 연대를 새롭게 확인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4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서석지의 조성과 보존·관리 역사를 구체적인 기록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영양 서석지의 역사적·문화유산적 가치를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