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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현 명예교수(재경영덕군 향우회장, 토벽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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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영양 문향골 문학제에 다녀왔다. 이번이 네 번째이다. 영양과 나의 인연은 최근에야 맺어졌다. 나에게는 큰 집이 있다. 큰 할아버지의 따님 중에 한 분이 창수 재령이씨네 집안에 시집을 갔다. 여기서 난 따님이 영양 정씨 집안에 시집을 가게 되었다. 그 따님과 4년 전 연락이 되었다. 서석지의 종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서석지를 방문했다. 여기서 정중수 교수를 만났다. 그는 열정적으로 서석지를 나에게 설명했다. 우리나라 3대 정원의 하나라는 것이다. 하룻밤을 여기서 유했다. 그해 여름 영양 문향골 문학제에 와서 강연을 해달라고 했다. 나는 기꺼이 그렇게 했다. 2023년 여름이었다. 좋은 분들을 만났다. 김옥순 영양여고 교장 선생님을 만났다. 김경종 영양문화원장도 만났다. 조카가 되는 정선주 씨도 만났다.
이렇게 인연은 이어졌다. 영양여고와 수비중학교에서 강연을 했다. 영해고등학교 시골 출신이 어떻게 고려대 법대 교수가 되었는지 성공사례를 말해주어 시골 학생들에게도 용기를 불어넣어달라는 것이었다.
2024년 여름에도 참석했다. 2024년 가을 나의 정년퇴임식에 김옥순 선생님이 오셔서 시낭송을 해주셨다. 2025년 여름에도 나는 참석을 이어갔다. 그해 8월 영덕문화원에서 하는 나의 강의에 정중수 교수, 김옥순 교장 선생님, 김경종 원장님이 오셔서 응원해주셨다. 2026년 2월 김옥순 선생님 정년퇴직에 내가 축하차 서울에서 영양으로 내려왔다. 반가운 만남이었고 서로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그 사이 나는 정중수 교수님을 우리 바다, 공부모임에 모시고 반도체 강의를 들었다. 정중수 교수는 해마다 12월에 영해중고 진로 특강에 강사로 참여해주신다.
이렇게 영양과 맺어진 인연은 계속되고 있다.
금년에도 어떻게 할지 며칠 전부터 고민이 되었다. 결국 나는 아침에 일어나 차를 몰고 영양으로 달렸다. 나를 영양으로 끌고 간 것은 5명의 좋은 인연들이다. 이 행사에 오면 이들과 1년에 최소한 한번은 보게 된다.
첫해 영양 시내에서 먹은 올갱이 국이 어찌나 맛있던지 나는 다시 먹고 싶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수비로 바로 달려갔다. 손님이 5명 이상이 되어야 식당이 문을 연다는 것이었다.
영양 수비면 청소년 수련원에 도착하자 반가운 얼굴들이 나를 반긴다. 정중수 교수, 김옥순 선생님, 김경종 원장님, 정선주 조카님, 황태진 회장 이렇게 지인들과 만남은 나를 기쁘게 했다.
방이 배정되었다. 여러 명이 잘 수 있는 방이다. 그런 것은 게의치 않는다. 레크리에이션을 했다. 사회자가 너무 일행을 잘 리더했다. 참석자 40여 명은 금방 하나가 되었다. 나도 적극적으로 레크리에이션에 참여했다. 이어서 영양 출신 배익천 동화작가님의 “아동문학 속의 동화와 그림책”이라는 동화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나는 김종완 동시 작가님의 시에 매료된 바가 있어서 그의 동화를 읽어보았다. 정말 훌륭한 내용이었다. 동화도 아이의 관점에서 적은 순수한 글이 우리 마음을 편하게 한다고 느꼈다.
밤이 되어 천문대를 다시 찾았다. 북두칠성 등 북극성을 찾았고, 스피카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카시오피아 자리도 들었다. 날이 조금 흐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바다에서 늘상 별을 찾아서 위치를 구하곤 했었다. 육지 깊숙한 산에서 찾아보는 별자리는 또 다른 운치가 있었다. 캄캄한 밤에 별이 잘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천문대 주위가 너무 어두운 것이 오히려 사람이 다칠까봐 걱정이 된다.
행사를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는데 사람들이 삼삼오오 방에 모여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영양 문향골 문학제의 백미는 밤에 모여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쌓아가는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끼리, 문학과 영양과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내년에도 다시 올 것인지 확인하는 자리가 된다. 나도 이 모임과의 인연을 이야기 했다. 정중수 교수가 나의 인생스토리를 말하는 바람에 교장 선생님 부부가 나에 대해 극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결국 다음날 시간을 보아서 특강을 하기로 이야기가 모아졌다.
나는 영양토박들이 몇 분이 있는 자리에서 문학과 관련해서 영양은 영덕으로부터 고대와 근대사를 빌리고 영덕은 영양으로부터 현대사를 빌려서 서로 완성을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영덕의 영해에는 고려시대 나옹화상, 목은 이색선생이 계신다는 것, 반면 현대에 들어와서 영덕은 마땅한 문학가를 배출하지 못했다. 영양은 조지훈 선생, 이문열 선생이 있다. 과거 동일한 행정구역에 속했던 영해부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좋다. 서로가 장점을 빌리면 완성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양에서 조지훈의 생가를 보면 이어서 영해의 목은 이색 선생의 생가를 보아야 완성이 된다. 이렇게 영양과 영덕은 도와가면서 살아 가야할 이웃사촌이다”. 나의 설명에 많은 분들이 공감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은 흘러서 자정이 넘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사람들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오무마을을 간다는 것이다. 나는 이미 3번 다녀와서 생략할까 하다가 다시 나섰다. 오픈카에 타고 있다가 차가 필요하다고 해서 나의 차를 가지고 대구에서 오신 3분을 태워서 갔다. 영양의 깊은 수비 골짜기에 붉은 색이 도는 소나무인 금강송 혹은 춘양목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수십미터 키의 곧게 자란 소나무가 너무 멋지다. 보아도 보아도 멋진 금강송 군락, 영양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최대 골짜기인 오무마을이 관광 코스가 되는 것은 왜일까? 오픈카를 타고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점, 고추밭과 수박밭을 볼 수 있다는 점, 왕피천으로 달리는 물줄기를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김경종 원장으로부터 구수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참석한 사람들과 더 깊이 사귈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는 점이다.
오전에는 부채에 그림을 그려 넣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행사의 백미인 윷놀이를 했다. 웇놀이는 언제 어디서나 흥이 나는 게임이다. 재미있게 놀았다.
행사가 조금 일찍 끝이 나서 주최 측의 도움으로 내가 해양인문학 강의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 20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밤사이에 나를 좋아하게 된 사람들이다. 점심보다 김인현을 택했다는 말을 했다. 나의 목표는 재미있게 해양인문학을 이들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개화된 이유는 해류에 있다. 자신을 희생하여 선박을 지키는 희생양극(징크). 목숨보다 중요한 복원성을 지키자. 해수비중은 1.025/담수비중 1.000의 의미는? 등 해양인문학적인 설명을 했다. 시간이 부족해서 20분 만에 마치느라 서둘러서 조금 아쉽다. 일행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점심보다 김인현을 택했다고 어떤 분이 말했다.
행사를 마치고 서석지에 다시 와서 송외숙 씨가 준비한 연꽃잎 차를 한잔 씩 했다. 정중수 교수는 서석지를 유네스코에 등재시키려고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군데로는 안되고 합쳐서 지정이 되므로 전남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세연정과 협력 중이라고 했다.
헤어지기 전에 황기주/김동자 선생님 부부, 손기화 선생님, 서정희 선생님, 심경은 선생님, 마라톤을 하시는 김종희 선생님과 친분을 가지게 되었다. 곧 단톡이 만들어지고 여기에는 11명의 지인이 들어왔다. 찍은 사진을 올리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운전은 힘들었고, 피로가 누적되어 며칠간 회복해야 했다. 꼭 이렇게 다여와야 하는가? 몸은 피곤했고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번에도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영양 문향골 문학제의 장점은 계속해서 훌륭한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일한 장소와 동일한 주제 동일한 패턴의 소주제들이다. 반복되어 2번 정도 가면 식상하게 된다. 그렇지만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난다. 문학을 해서 그런지 한결같이 깨끗한 심성을 가지고 도와주고 칭찬을 잘 하는 분들이다. 그리고 금방 사람들을 좋아하게 된다.
나는 또 내년에도 행사에 참여할 것이다. 영양은 이미 나의 고향과 같다. 문학을 하는 순수한 분들과 만나는 행사, 1년을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