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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맨발의 큰절, 그리고 민주주의의 질문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6.06.05 10:09 수정 2026.06.17 22:32

영덕 사거리 한복판에서 한 청년 후보가 맨발로 큰절을 올리는 모습을 보았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시민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그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깊은 울림을 남겼다. 누군가는 이를 선거용 연출이라 말할 수 있고 누군가는 절박한 호소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가장 낮은 자세로 시민 앞에 서고자 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은 깊다. 선거 때만 고개를 숙이고 당선 후에는 시민보다 권력을 먼저 바라본다는 냉소가 만연하다. 그런 현실 속에서 청년 후보의 큰절은 정치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정치란 권력을 얻는 기술이 아니라 시민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어야 한다. 높은 단상보다 낮은 땅을 먼저 밟고, 화려한 구호보다 사람들의 아픔을 먼저 살펴야 한다. 하지만 정치는 자세만으로 평가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치인의 진정성은 사진이 아니라 정책과 실천으로 증명된다. 중요한 것은 맨발이 아니라 그가 걸어갈 길이다. 낮은 자세가 선거 기간의 이벤트가 아니라 당선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는지 권력 앞에서도 시민 편에 설 수 있는지가 진정한 정치의 시험대다.
 

이번 지방선거를 돌아보면 또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지역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선거였지만 정작 가장 중대한 현안인 원전 유치 문제에서는 후보들 사이에 뚜렷한 차이를 찾기 어려웠다. 모든 후보가 원전 유치에 찬성 입장을 보였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이 경쟁하는 제도다. 특히 원전처럼 수십 년 동안 지역의 운명을 좌우할 문제라면 찬성과 반대의 논리가 공개적으로 토론되고 검증되어야 한다. 그런데 모두가 같은 목소리를 낸다면 시민은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는가. 더 큰 문제는 원전 유치가 지역 발전의 유일한 해법처럼 제시된다는 점이다. 인구 감소와 청년 유출, 경제 침체를 해결하기 위해 원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단순하고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지역의 미래를 하나의 산업에만 의존하는 방식은 위험하다. 원전이 곧바로 청년들의 귀향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며 지역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자동으로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원전은 단순한 산업시설이 아니다. 사고 위험과 사용 후 핵연료 문제, 지역 이미지 변화, 주민 갈등 등 다양한 사회적 비용을 동반한다. 과거 원전 계획이 철회되었던 지역이라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국가 정책의 변화가 반복될 때마다 지역사회는 찬성과 반대로 나뉘고 공동체는 깊은 상처를 입는다.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와 공동체가 희생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발전이라 부르기 어렵다.
 

지방정치의 역할은 중앙정부 정책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 주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모아 국가에 전달하는 것이 먼저다.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공론화 과정을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찬성만 존재하는 선거는 건강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동의의 강요일 수 있다.
 

지역은 단순한 정책 대상지가 아니다.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며 아이들이 살아갈 고향이고 조상들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공동체다. 바다와 숲, 농업과 관광, 문화와 사람의 가치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에 대한 더 넓고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선거는 끝났고 승패는 결정되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선거로 끝나지 않는다. 사거리에서 맨발로 큰절을 올리던 청년 후보의 모습이 진정 시민을 향한 마음이었다면 이제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시민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정답을 강요하는 제도가 아니라 질문할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원전을 찬성할 자유가 있다면 반대할 자유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두 목소리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지역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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