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정치/경제

지방선거 공천 불복 가처분 최소 70건…정치 갈등 법정으로 갔다

박문희 기자 입력 2026.05.13 06:39 수정 2026.05.13 06:43

법원 인용은 3건 그쳐…정당 자율성 폭넓게 인정

공천 불신·계파 갈등 커지며 ‘정치의 사법화’ 심화 우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직선거후보자추천, 이른바 공천 결과와 절차에 불복해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한 사례가 최소 70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당 내부에서 풀어야 할 공천 갈등이 법정으로 옮겨가면서 ‘정치의 사법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천 배제와 경선 결과를 둘러싼 불신이 커질수록 정당의 자율적 조정 기능은 약해지고, 정치적 결정은 절차적·법률적 다툼으로 바뀌고 있다.

서울남부지법이 12일 기준 판단한 공천 관련 효력정지 가처분 사건은 41건이다. 이 가운데 국민의힘 관련 신청은 28건, 더불어민주당 관련 신청은 13건이다. 법원이 인용한 사건은 3건에 그쳤다. 대부분은 공천관리위원회의 컷오프 결정에 불복한 신청이었다. 일부 신청인은 경선 방식과 공천 절차에 하자가 있다며 법원의 판단을 구했다.

관련 사건은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가 심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명백한 절차상 하자나 민주적 정당성 훼손이 입증되지 않는 한 정당의 공천 판단에 대한 개입을 자제하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정당 활동의 자유와 자율성을 폭넓게 인정해 온 기존 흐름과 같은 맥락이다.

그동안 법원은 공천과 징계 등 정당 내부 사안에 신중하게 접근해 왔다. 정당의 결정에 사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면 헌법상 보장된 정당 활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내부에서도 공천 결과에는 일단 승복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정치적 갈등을 법원으로 가져가는 데 따른 여론의 부담도 작지 않았다.

흐름은 2021년 12월 대법원 판결 이후 달라졌다. 당시 대법원은 정당 활동도 헌법 질서 안에서 보장되는 것이며, 비민주적 운영을 막기 위한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이후 당내 갈등을 사법 심사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넓어졌다.

공천에서 배제되거나 경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정치인들은 당내 구제 절차가 실효적이지 않다고 판단할 경우 법원 문을 두드리고 있다. 지도부의 권위가 약해지고 계파 갈등이 커질수록 이런 흐름은 더 뚜렷해진다. 공천 결과가 정치적 결정이 아니라 법률적 분쟁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사법 절차가 정치의 실패를 대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법원은 절차적 위법 여부를 판단할 뿐, 정당 내부의 신뢰 붕괴와 공천 불신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잦은 가처분 신청은 정당의 자정 능력 약화와 당내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정당이 이의 제기를 단순한 불복이나 자존심 싸움으로 치부하면 사법부 의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공천 과정에서 경선 기준과 심사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의 신청을 실질적으로 심사하는 내부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후보자와 당원이 결과에 승복할 수 있다.

공천은 정당의 핵심 권한이다. 동시에 유권자의 선택권과 직결된 공적 절차다. 정당이 스스로 공정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법원은 계속 호출될 것이다. 정치가 법정으로 밀려나는 현실은 정당정치의 위기를 보여준다. 정당의 자율성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 위에서만 설 수 있다.



저작권자 고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