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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공원 창포말등대>(영덕읍 창포리 산5-5)
어느 곳이든 사물을 상징하고 지역 특성과 이미지에 걸 맞는 조형물은 그 자체로 광고다. 나아가 이념의 표상이 되고 장소성의 스토리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예로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파리의 개선문'을 들 수 있다.
'영덕블루로드 4코스의 푸른 바다'는 바다와 하늘이 함께 걷는 환상의 바닷길 코스로 인기가 높다. 이곳 해맞이 공원의 명품은 영덕을 상징하는 등대로 영덕의 명물인 대게의 집게발이 등대를 감싸고 오르는 형상이다. 상부의 붉은 색은 해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해돋이의 명소로 게가 해를 감싸는 이미지이다. 따라서 지역 정체성과 자연경관, 나아가 시각적 감성을 함께 자아내고 있다.
| ↑↑ 해맞이공원 창포말등대 스케치 |
해는 같으나 길손의 감흥은 다르니 창파(滄波)의 변화처럼 물결치듯 다가온다. 또 하루의 선물이다. 하늘이 어둠을 뚫고 여명과 함께 수묵과 암청, 보랏빛으로 물드는 순간, 수평선에서 붉은 해가 솟는다. 오롯이 해는 산이 아닌 바다에서 뜬다고 동해사람들은 믿을만하다.
이 해돋이를 찬미한 시인 묵객들은 수도 없지만 빠질 수 없는 동해의 기행문으로 「동명일기(東溟日記)」을 꼽는다. 이 일기는 조선 후기 의유당(意幽堂) 남씨(南氏)가 남편 신대손(申大孫)의 함흥 부임에 동행해 동명(동해) 일출을 본 여정을 기록한 기행 수필이다. 1772년 9월 17일 장엄한 일출의 감동을 기술하였다. 당시 여성으로는 외유(外遊)가 어려운 시기에 남다른 열정과 섬세한 감수성으로 감흥을 자아낸다. 현대어보다는 원문 맛을 위해 부분(한국학중앙연구원 편)을 옮긴다.
"처엄 낫던 붉은 긔운이 백지 반 장 너비만치 반드시 비최며 밤같던 긔운이 해 되야 차차 커가며 큰 쟁반만하여 ㅤ붉읏붉읏 번듯번듯 뛰놀며 적색이 왼 바다희 끼치며 몬져 붉은 기운이 차차 가새며 해 흔들며 뛰놀기 더욱 자로하며 항 같고 독 같은 것이 좌우로 뛰놀며 번득여 냥목이 어즐하며 붉은 긔운이 명낭하야 첫 홍색을 헤앗고 텬듕의 쟁반같은 것이 수레박회 같아야 물속으로셔 치미러 밧치드시 올라 붙으며 항 독같은 기운이 스러디고……."
이곳 영덕읍 창포리 지명은 유난히 붓꽃(창포)이 갯가에 많이 피어 '붓개' 또는 '창포'로 전해지고 있다. 즉 창포말(末)은 이 땅에 자생하는 바다의 끝이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온 지형덕분에 해역을 한 눈에 조망하는 등대 장소로 적합한 것이다.
누구든 이곳에 오면 기념사진을 남기게 된다. 또 인근에 머물며 전망대에 올라 일출을 맞이하고 싶어진다. 새날 속에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우주의 기상을 느낀다. 일망무제(一望無際)와 장엄한 동해의 기운으로 심신이 정화되는 까닭이다.
<영덕 풍력발전단지>
세상에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있게 마련인가.
수십 년간 영덕의 또 다른 상징물인 풍력발전단지가 연일 수난을 겪고 있다.
영덕 10경 중의 하나로 바닷가 주변 산과 언덕에 이색적인 풍광을 연출해 온 풍력단지이다. 해맞이 공원 뒷산에 오르면 바다를 향한 노스탤지어처럼 서서 돌아가는 거대한 바람개비가 이채로운 광경이다.
| ↑↑ 영덕 풍력발전단지 스케치_1 |
| ↑↑ 영덕 풍력발전단지 스케치_2 |
위의 뉴스를 접하며 글을 쓰는 필자의 마음은 스산하다. 먼저 사고로 숨진 유가족에게 송구함이 일어나기에. 이미 오래 전(2016년) 화첩에 담은 그림과 근자에 현장을 다녀와 작품 준비 중 사건 소식이 들려 온 것이다. 해서 미련을 버리려고도 마음먹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이 엄혹한 현실을 받아들이며 붓을 들기로 했다. 한 때 세상의 빛을 나누어 주었던 상징물을 증언하는 일도 작가의 소명임을 자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