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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금요칼럼]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6.03.13 10:23 수정 2026.03.13 10:25

최 정 연 칼럼위원

영덕 핵발전소 유치에 반대합니다. 다시 이 문장을 써야 하는 현실이 참담합니다.
 

영덕은 이미 한 차례 깊은 상처를 겪었습니다. 원전 유치 찬반 갈등으로 마을이 갈라지고, 이웃이 등을 돌리고, 십여 년 넘도록 지역은 개발도 비전도 제대로 논의하지 못한 채 발목이 잡혀 있었습니다. 그 시간은 단순한 정책 논쟁이 아니라 공동체 붕괴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정부가 영덕 원전 계획을 철회하고 백지화했을 때 주민 91.7%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이제는 갈등 없이 살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되는 마을, 원전 찬반으로 사람을 구분하지 않아도 되는 공동체를 되찾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왜, 다시 입니까? 또다시 십여 년의 갈등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까? 우리는 많이 배우지 못했고, 세상 물정에 밝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합니다.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통계표 속 인구소멸 지역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살아가는 고향입니다.
 

영덕 전 주민의 삶을 처참하게 흔든 명백한 원인은 산불이었습니다. 삶의 터전이 타버렸고, 생계가 무너졌고, 공동체는 회복의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 재난은 주민의 책임이 아닙니다. 국토와 산림을 지키는 일은 국가의 책무입니다. 피해 회복과 재건 역시 국가가 책임 있게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묻습니다. 이 고난의 틈을 이용해 이미 철회한 원전 정책을 다시 들고나오는 것이 과연 정당합니까?
 

한번 철회하고 백지화한 국가 사업은 단순한 정책 변경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민에게 준 공적 약속입니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접은 사업을 다시 꺼내 드는 일은 신뢰의 문제입니다. 국가 정책이 이렇게 쉽게 뒤집힌다면 어느 지역이 정부의 말을 믿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겠습니까?
 

더 큰 문제는 절차입니다. 중대한 국책사업을 다시 추진하려면 최소한 명확한 법적 근거와 투명한 절차, 그리고 충분한 주민 동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과거 갈등의 상처가 여전히 생생한 지역에서 속도전 여론조사나 형식적 동의 절차로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다면 그것은 민주적 합의가 아니라 행정의 편의일 뿐입니다.
 

갈등을 치유해야 할 시점에 갈등을 재점화하는 결정, 회복을 도와야 할 국가가 또 다른 불씨를 던지는 결정은 결코 책임 있는 행정이라 할 수 없습니다. 원전은 단순한 산업시설이 아닙니다. 지역의 정체성과 미래를 통째로 바꾸는 선택입니다. 그 선택은 무엇보다 주민의 삶을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영덕은 이미 한 번 갈등으로 무너졌습니다. 우리는 다시 그 시간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원전 유치가 지역 발전의 해답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발전은 사람을 갈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역 공동체를 찢어놓고 얻는 세수와 지원금이 과연 지속 가능한 번영입니까? 갈등과 불신 위에 세워진 발전은 언제든 다시 무너집니다.
 

우리는 선언합니다. 국가는 재난을 복구하고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데 힘을 써야 합니다. 이미 철회한 정책을 재추진하며 지역을 다시 시험대에 올려놓아서는 안 됩니다.무지한 변방의 백성일지라도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영덕의 미래는 실험대상이 아닙니다. 국가는 약속을 지키십시오. 절차를 지키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먼저 보십시오. 그곳에서 사람이 숨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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