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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금요칼럼] 설 날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6.02.13 11:19 수정 2026.02.13 11:22

김 청 자 / 김청자패션부틱대표 패션디자이너, 전)재경영덕읍향우회장

칼바람이 볼을 에이는데 한 열흘만 지나면 설이다. 예전부터 무슨 심술인지 음력 설날이면 반갑잖은 추위가 몰려 오기 일쑤였다. 가래떡을 뽑으려고 방앗간에 줄이라도 서려면 어찌나 추웠던지, 그래도 설을 기다리는 마음과 설레는 마음 때문에 잘 견디지 않았을까 싶으나 이젠 그 가래떡의 추억담을 아무리 입담 좋게 얘기한 들 알아들을 아이들이 없다. 날 때부터 갸름한 타원형으로 잘 썰어진 떡국떡은 쉽게 사오면 그만이고 밀가루 재료의 것에서부터 각양 크기의 떡볶이떡 까지 떡집에 산처럼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가래떡의 낭만을 알리없다. 가끔 길에서 석쇠에 구워 파는 간식으로의 그리움을 기억할 정도일수도 있겠다.
 

아무려나 그 기다리고 기다리던 설날이 다가온다. 이제 나이가 들어 설이 되어도 고향에 내려갈 생각은 엄두도 못내고 마음만 고향으로 이미 달려가 있다. 비교적 부유했던 우리집은 설 준비를 일찍부터 하는 편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대접할 떡도 많이 준비해야 하니 마당의 절구통이 쉴 날이 없을 정도였다. 가래떡이야 방앗간에서 빼온다 하더라고 인절미 등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하기에 암반과 떡메가 쉴 날이 없었다. 인절미는 콩가루를 묻혀 붙지 않게 보관하기에 겨울인 설의 보관 음식으로 아주 알맞은 떡이었다. 북쪽지방에서는 아예 자배기 큰 그릇에 떡을 그대로 담아놓았다가 먹을 양 만큼을 칼로 베어다가 녹여서 고물을 입히거나 불판에 지져서 따끈하게 해서 먹었다. 남쪽은 그렇게 하지 않고 미리 고물을 묻혀 보관했다. 아이들은 그 콩고물 냄새만 맡아도 입에 침이 고이곤 했다.
 

설음식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지만 우선 아이들의 관심사는 설빔에 더 쏠려 있었다. 행여 이번 설에는 운동화 한 켤레 얻어 신을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로 목이 가늘어지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실제 운동화를 신고 나오는 아이는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살기 팍팍하던 시대를 살아 낸 우리 세대다.
 

어머니는 설이면 추석 때와 마찬가지로 동짓달부터 식구들의 설빔 마련에 일손이 바빠진다. 어머니의 다듬이질 소리에 공부도 더 잘 되었고 그 장단에 눈이 스르르 감겨 잠이 들곤 했다. 명주옷들을 곱게 잘 뜯어서 조심스레 손질한 후 그 명주 헝겊을 부위대로 잘 구별하여 다듬이 질을 시작한다. 고운 명주올이 터지지 않도록 자근자근 두드려야 한다. 게다가 고운 주름이 잘 펴지지 않으니 홍두깨를 매겨서 아주 조심스럽게 두드려 고운 주름을 편다. 그 정성과 노고는 사랑 없이는 아예 불가능할 것 같다는게 자란 후의 생각이다.
 

식구들의 옷을 한 벌씩 바느질해서 새옷처럼 완상시켜 나가며 어쩌면 삶의 희열을 가장 진하게 느끼셨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내가 옷을 지으면서야 해 본 생각이었다. 어머니의 솜씨와 유전인자를 물려 받은 내가 패션 쪽의 일을 하면서 고객의 옷을 디자인 할 때 그 주인공의 마음 속 까지를 가늠해 보지 않으면 제대로 좋은 디자인의 발상이 떠오르지 않던 기억을 되살리며 해 보는 생각이다.
 

어머니는 너무 낡은 옷감을 버리고 새 명주필을 꺼내 든다. 올해는 새 명주 옷을 입게 되는 행운이 오려나 간절히 기다리지만 말도 못하고 어머니의 바느질 하시는 모습만 바라보며 가슴 콩닥거리고 침만 삼키던 어린 것이 이제 여든 고개를 넘긴지 한참이다. 어머니가 정성껏 지어주신 명주 옷 설빔을 차려 입고 나가면 벌써 문밖에서 기다리던 친구들이 반색을 하고 얼싸안는다. 그 것도 잠간, 이내 친구들의 시선이 내 운동화 발 끝에 꽂히면서 시무룩해지던 그들의 실망 담긴 표정이 지금도 시야에 가득하다. 그 영자도 옥자도 어느새 황천 길들을 가버렸다. 무엇이 그리도 바빴더란 말인가? 운동화 한번 신어보는게 소원이던 어린 것들이 구두에 털신에 온갖 호사를 자 누렸건만 이승에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소망은 이룰 수 없었던가보다.
 

우리 부모님의 뼈 빠진 고생을 딛고 우리는 공부할 수 있는 복을 받았다. 그 교육열이 결국 오늘날 우리나라의 발전을 이끌어 낸 견인차가 되었다는게 학자들의 분석이다. 우리세대는 중동으로 독일로, 오대양 육대주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달라를 벌어오고 산업화에 성공했다. 급기야 세계 경제 10대 강국의 반열이 올랐으니 올해 설날은 어깨를 활짝 펴 보자. 옥자야 영자야 하늘에서 이나라를 위해 기도하기를 쉬지 않겠지. 보고싶다.
 

오늘의 이 풍요로운 설날이 우리 후손 만대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당장 나라를 거덜 낼 것 같은 보도들을 보면서 불안해지는 것이 한갖 늙은이들의 조바심 이라고만 무시하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는 자세로 이나라를 이끌고 가기만 바랄 뿐이다. 저만치서 대게의 붉은 발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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