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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려나 그 기다리고 기다리던 설날이 다가온다. 이제 나이가 들어 설이 되어도 고향에 내려갈 생각은 엄두도 못내고 마음만 고향으로 이미 달려가 있다. 비교적 부유했던 우리집은 설 준비를 일찍부터 하는 편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대접할 떡도 많이 준비해야 하니 마당의 절구통이 쉴 날이 없을 정도였다. 가래떡이야 방앗간에서 빼온다 하더라고 인절미 등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하기에 암반과 떡메가 쉴 날이 없었다. 인절미는 콩가루를 묻혀 붙지 않게 보관하기에 겨울인 설의 보관 음식으로 아주 알맞은 떡이었다. 북쪽지방에서는 아예 자배기 큰 그릇에 떡을 그대로 담아놓았다가 먹을 양 만큼을 칼로 베어다가 녹여서 고물을 입히거나 불판에 지져서 따끈하게 해서 먹었다. 남쪽은 그렇게 하지 않고 미리 고물을 묻혀 보관했다. 아이들은 그 콩고물 냄새만 맡아도 입에 침이 고이곤 했다.
설음식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지만 우선 아이들의 관심사는 설빔에 더 쏠려 있었다. 행여 이번 설에는 운동화 한 켤레 얻어 신을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로 목이 가늘어지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실제 운동화를 신고 나오는 아이는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살기 팍팍하던 시대를 살아 낸 우리 세대다.
어머니는 설이면 추석 때와 마찬가지로 동짓달부터 식구들의 설빔 마련에 일손이 바빠진다. 어머니의 다듬이질 소리에 공부도 더 잘 되었고 그 장단에 눈이 스르르 감겨 잠이 들곤 했다. 명주옷들을 곱게 잘 뜯어서 조심스레 손질한 후 그 명주 헝겊을 부위대로 잘 구별하여 다듬이 질을 시작한다. 고운 명주올이 터지지 않도록 자근자근 두드려야 한다. 게다가 고운 주름이 잘 펴지지 않으니 홍두깨를 매겨서 아주 조심스럽게 두드려 고운 주름을 편다. 그 정성과 노고는 사랑 없이는 아예 불가능할 것 같다는게 자란 후의 생각이다.
식구들의 옷을 한 벌씩 바느질해서 새옷처럼 완상시켜 나가며 어쩌면 삶의 희열을 가장 진하게 느끼셨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내가 옷을 지으면서야 해 본 생각이었다. 어머니의 솜씨와 유전인자를 물려 받은 내가 패션 쪽의 일을 하면서 고객의 옷을 디자인 할 때 그 주인공의 마음 속 까지를 가늠해 보지 않으면 제대로 좋은 디자인의 발상이 떠오르지 않던 기억을 되살리며 해 보는 생각이다.
어머니는 너무 낡은 옷감을 버리고 새 명주필을 꺼내 든다. 올해는 새 명주 옷을 입게 되는 행운이 오려나 간절히 기다리지만 말도 못하고 어머니의 바느질 하시는 모습만 바라보며 가슴 콩닥거리고 침만 삼키던 어린 것이 이제 여든 고개를 넘긴지 한참이다. 어머니가 정성껏 지어주신 명주 옷 설빔을 차려 입고 나가면 벌써 문밖에서 기다리던 친구들이 반색을 하고 얼싸안는다. 그 것도 잠간, 이내 친구들의 시선이 내 운동화 발 끝에 꽂히면서 시무룩해지던 그들의 실망 담긴 표정이 지금도 시야에 가득하다. 그 영자도 옥자도 어느새 황천 길들을 가버렸다. 무엇이 그리도 바빴더란 말인가? 운동화 한번 신어보는게 소원이던 어린 것들이 구두에 털신에 온갖 호사를 자 누렸건만 이승에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소망은 이룰 수 없었던가보다.
우리 부모님의 뼈 빠진 고생을 딛고 우리는 공부할 수 있는 복을 받았다. 그 교육열이 결국 오늘날 우리나라의 발전을 이끌어 낸 견인차가 되었다는게 학자들의 분석이다. 우리세대는 중동으로 독일로, 오대양 육대주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달라를 벌어오고 산업화에 성공했다. 급기야 세계 경제 10대 강국의 반열이 올랐으니 올해 설날은 어깨를 활짝 펴 보자. 옥자야 영자야 하늘에서 이나라를 위해 기도하기를 쉬지 않겠지. 보고싶다.
오늘의 이 풍요로운 설날이 우리 후손 만대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당장 나라를 거덜 낼 것 같은 보도들을 보면서 불안해지는 것이 한갖 늙은이들의 조바심 이라고만 무시하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는 자세로 이나라를 이끌고 가기만 바랄 뿐이다. 저만치서 대게의 붉은 발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