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화가의 발상지는 영덕 남정 부경리 거북바위 부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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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던 수로부인(水路夫人)의 이야기가 시작된 헌화가의 무대는 당시의 7번 국도(國道)였던 북해통(北海通), 즉 안강→신광→흥해→청하→송라→영덕→평해→울진을 잇는 역로(驛路)의 중심에 있던 우리 지역 남정면 부경리의 지경천(地境川), 즉 예전의 골곡포(骨谷浦)가 그 중심이었다. 그래서 2012년 9월 14일 오후 2시에 “헌화가(수로부인)발상지 재조명 학술심포지엄”을 영덕군민회관에서 개최를 하여 이를 더욱 더 명확하게 하였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장사리 문산호가 떠있는 육땅 한편에 작은 공연장을 만들어 신라때의 수로부인의 헌화가를 잘 엮어 연극을 만들고 고려때의 무고와 오랜 전통을 가진 월월이청청 등과 같이 상시 공연을 하고 6.25때의 장사상륙작전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문산호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면 영덕에 관광객 이천만 명만 오겠는가?”라고 말이다.
철쭉꽃도 그 양반이 저절로 꺾어 준 것이 아니다. 자주빛 관복을 입은 순정공이 청해서 한 것이다. 아마 순정공은 당시 신라의 진골(眞骨)로 유명한 장군이었을 것이다.
수로부인이 영덕을 지나간 것은 성덕왕 20년 서기 721년 봄일 것이다. 삼굿사기의 다음의 기록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성덕왕 이십년 칠월 하슬라도정 이천 명을 징발하여 북쪽 변경에 장성을 쌓았다.(聖德王 二十年 七月 徵何瑟羅道丁夫二千 築長成於北邊)”
즉 봄 3월에 하슬라도 북쪽 변경에다 장성을 쌓아라는 명령을 받은 순정공이 부임하자 바로 이 명에 따라 성을 쌓은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헌화가(獻花歌)라는 향가(鄕歌)는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나하고는 나의 풀이하고는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다고 한다.
자줏빛 바위가에 紫布岩乎邊希
암소 잡은 손 놓게 하시고 執音乎手母牛放敎遣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吾肹不喩慚肹伊賜等
꽃을 꺾어 바치겠나이다. 花肹折叱可獻乎理音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