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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가느다란 다리로 깡충거리며 뛰어오르던 칠보산, 그 숲은 지금 오묘한 단풍의 향연으로 얼마나 영덕 고향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을까? 그때 함께 깔깔거리며 그 숲을 누비던 친구들이 많이 곁을 떠났다.
양자야 저 잘 있는 거지? 하늘이 얼마나 좋아서 그리도 일찍 가버렸단 말이니? 이 좋은 가을 좀 더 함께 하고 천천히 갈 것이지, 나는 올해도 네 생각에 눈물을 훔치며 영덕 고향에 꽁치 젓갈 사러 간다. 네가 보내 주던 꽁치 젓갈로 담근 고향 영덕 김치가 얼마나 먹고 싶던지 아무리 바빠도 손수 담가 먹고 있단다.
그 시절 그 김치 배달돼 오는 것을 본 서울 친구들이 우리들의 우정을 얼마나 부러워하면서 그 김치를 먹었는지 친구는 다 모를 거다.
이제 네가 떠나고 나니 그 자랑으로 우쭐댈 일도 없고 가을이 되어 여인들이 김장 걱정으로 심란해질 때면 나는 고향 영덕으로 그 꽁치 젓갈을 사러 간단다. 옥계의 맑은 물은 아직도 잔잔해서 명경같이 곱건만 우리들 고운 얼굴은 언제 이리 골이 깊어졌단 말이냐? 그래도 그 옥계의 거울에 내 얼굴 비춰보고 올 거다.
칠보산 그 숲의 오묘한 가을 절경을 내 둔필로는 적어 낼 도리가 없어 그냥 나만 마음으로 즐기련다. 이번에는 다리가 좀 힘들어도 초입에라도 가보고 와야겠다. 영덕은 지금 가재미가 한창이라 관광객들이 입호사와 눈호사를 함께 하는 내 고향 영덕으로 몰려가면 좋으련만 어떤지 모르겠다. 내 고향 영덕 어른들도 많이 친절해지셨으니 온 나라 관광객들 영덕 가을 보러 가소, 참말로 좋습네다.
나도 어서 가서 영덕 가재미 물회 한 사발 먹고 꽁치 젓갈 김치에다 김이 나는 뜨거운 밥 한 공기만 비우고 와야겠다. 친구랑 함께 놀던 그 골목도 걸어보고 푸른 하늘 배경 삼아 붉은 색 잔치 벌인 감나무도 올려보고 어머니 분주하던 옛 집도 둘러보면 친구 생각 엄마 생각 조금은 잠재울까?
가을과 김장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은행잎을 보면 여인들은 이 가을에 샛노란 배춧속을 생각하며 미소 짓는다. 새빨간 고춧가루는 붉은 단풍잎 쏟아질 때 겹쳐 지나가지 않니? 친구야 제 생각도 지금 나와 같은 거지?
그런 감각 없었다면 그리도 맛있는 김치를 담가낼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한껏 푸른 하늘에 살짝 낀 흰 구름은 잘 다듬어 놓은 쪽파를 연상시키니 그 김치도 뺄 수 없네. 여인들은 어쩌면 이런 재미로 그 힘든 일들을 평생 하며 사는 지도 모르겠다. 나도 아무리 바빠도 여인임에 틀림없는 모양이다. 이 김치 저 김치 공연히 버무려 먹고 싶구나 그리고 옛 친구들 모일 수만 있다면 큰 상을 앞에 두고 함께 웃고 먹고 싶다. 그런데 어이하랴 너무 일찍들 곁을 떠나 버렸구나 이제 남은 친구들이라도 자주 보며 살아야겠는데 그 또한 쉽지만은 않은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이번에 고향 가면 친구들도 좀 만나보고 싶은데 몇 명이나 볼 수 있을지 그것도 미지수다. 팔십을 넘겼으니 하나같이 여기저기 아프다는 소리만 입에 달고 사는 신세가 되어 그렇다. 그래도 살아있음 감사하니 자주 만나 볼 일이다. 양자야, 친구야 이 가을에 우리 이렇게라도 만나니 반갑기 그지 없다. 이 가을 함께 즐기고 잘 살아가는 고향 영덕 축하하며 즐겨 보자. 지난 봄 산불 흔적 지금도 가슴 아프지만 그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송이가 우리 영덕 고향 분들 이마 주름 조금이라도 펴 주었으니 감사밖에 드릴 일 없다. 하늘에서도 기도해 주었을 테니 친구에게도 감사 한다.
친구 생각으로 이 가을 활짝 핀 마음으로 고향길 달려가니 천하에 친구밖에 좋은 것이 또 있으랴. 친구야 고맙다. 꽁치 젓갈 김치에 푹 빠지게 해준 은혜 내 잊지 않을게. 고맙다 친구야.
내 고향 영덕은 생각할수록 멋지고 좋은 곳이다. 바다의 풍부한 어족이 있고 아름다운 산수가 함께 있으니 이보다 복된 땅이 어디 흔할까? 사랑스러운 내 고향 영덕, 소중한 내 고향 영덕, 고마운 내 고향 영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