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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맘 때 쯤이면 누구나 하는 생각은 좀 더 잘 살걸 그랬다. 허송했구나, 어떡하지? 등등으로 착잡해진다. 그래서 어느 문인은 12월, 아니 11월 부터를 껄껄달이라고 불렀다. 참 재미있는 표현이다. 건망증 환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지난해에도, 그 지난해에도 똑같은 소리를 해내며 한해의 마지막 달을 맞고 보낸다.
올해는 그런대로 한 숨 돌리며 지낸 것 같다. 살림살이는 팍팍했지만 코로나라는 불청객이 변이니, 신종이니 해 가며 애를 먹이는 일도 있긴 했으나 그래도 4년 전의 위세에 비하면 이제 사라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미미해 진 것은 사실이 아닌가 한다. 노약자나 어린 아이들에게 위협이 되는 새로운 변이가 있다는 말도 돌아다니는 형편이지만 이제 그 기세는 꺾인 것이 분명하다. 이제 우리가 정신적 위축에서 벗어나야 하는 일이 더 시급해 진 것 같다. 자신감을 갖고 생업을 살려야 한다.
요즘 단체들은 4년 넘게 침묵했던 모임들을 깨워내느라 분주하다. 좋은 일이다. 서로 소통하고 즐기고 또 걱정도 함께 나누자. 고향 영덕의 대게 철을 앞두고 우리 출향민들은 바쁜 틈을 내서 친구들을 불러 모아 고향으로 내러가 대게 잔치를 외지 사람들에게 성대하게 베풀어 봄도 좋을 것이다. 옥게의 맑은 물에 아직 붉은 단풍잎이 운치를 더하는 그림을 잠깐 만나는 행운도 운 좋으면 만날 수 있을테니 강력히 권고한다.
서울의 삭막한 가로수가 나목을 드러내고 온화한 겨울바람이 가지 끝을 흔드는 따뜻한 겨울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니 서울은 사람들 마음에 봄바람이 분다. 마음도 훈훈하니 우선 자선냄비에 지갑을 좀 열러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것 같다. 혼자 이웃돕기를 하려면 부담이 커서 망서렸다면 함께 모아서 큰일을 할 수 있는 이런 경우가 오히려 고마운 일로 다가온다.
세계는 전쟁의 소용돌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해를 보낼 것 같다. 바라기는 제발 전쟁이 끝나서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지켜야 한다. 어린이의 피해는 더 가슴을 아프게 한다. 어른 믿고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몹쓸 짓을 하고 있으니 하늘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흑토끼가 떠나려 한다. 어느 해나 새해가 밝을 때는 희망과 덕담으로 가득 차지만 그 해를 보낼 때는 자기 만이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든 것 같은 생각에 우울해 지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무리 모두 각자의 한해 수확을 점검해 보자. 우선 그동안처럼 반성문 쓰는 자세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잘했노라고 외치는 대여섯살짜리 아이가 된 심정으로 잘 한 것, 좋은 것, 복받은 것, 들을 세어보자.
가족이 큰 병에 시달리지 않았다, 밥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만큼의 수입이 있었다, 아이가 상급학교에 무난히 진학하였다, 취업을 준비하던 자녀가 그 문을 통과했다. 승진했다, 가게 손님이 지난해 보다 많아졌다. 소원하던 부부관계가 좋아졌다, 노부모가 치매에 걸리지 않고 무사하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문제 일으키지 않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루 다 세기 힘들 정도의 복을 받았다. 이런 일들이 모두 내 것이 아니지만 한 번 상상해 보자. 이 반대 현상이 내게 닥쳤다면 어떤 심정일까?
그러면 모두 다 잘 못 산 한해가 되는 건가? 아니다. 그런 일을 당했다 한들 그보다 더 심하지 않기가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곳에 눈금을 놓고 세어보자. 찡그렸던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신나게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받은 복을 세어 보게 될 것이다.
연말에 마무리 하는 모임을 지방으로 나들이 가서 하고 싶은 사람들은 영덕의 대게를 떠올리면 좋겠다. 속살이 꽉찬 대게처럼 우리도 한해를 꽉 차도록 마무리 해보자. 영덕 앞바다의 짓푸른 동해물처럼 맑은 심성으로 돌아가서 한해를 돌아보자. 더 좀 잘 할 수 있었던 일들 그 실수의 원인들을 말갛게 들여다보자. 그래서 새해에는 두 번 다시 껄껄 달을 만들지 말자.
그래 떠나자 동해 바다로! 고향은 언제나 생각만으로도 가슴 따뜻해지는 만년 난로가 아니던가.
쨍그렁 쨍그렁 구세군 종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데 전혀 소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람들이 부지런히 냄비를 채우고 있다. 고사리 손도 보이니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