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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금요칼럼】 기다림을 빼앗긴 봄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3.04.08 14:41 수정 2023.04.08 14:45

↑↑ 김청자( 패션 디자이너 김청자 부띠끄 대표)
   

세상사 중에 어려운 것이 많지만 필요한 것을 기다릴 때의 갈급함과 절실함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안다. 사랑하는 이가 오기를 기다리고, 소식 없는 태기를 기다리고, 가게를 열어 놓고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고, 집나간 아이를 기다리고 그 종류와 형상을 어이 다 말 할 수 있으랴. 그런 심각한 것 말고도 우리는 변하는 계절을 즐기면서 봄이면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쏠쏠한 즐거움을 즐기며 살아왔다. 눈 속에서 매화가 피어나면 탄성을 지르고 이어서 질서정연하게 차례로 하나씩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다.


대체로 서울을 기준으로 보면 제일 먼저 매화가 피고 산수유, 개나리, 목련, 벚꽃 등의 순서로 봄의 전령사들이 앞 다투어 달려왔다. 수줍게 매화가 피면 숨을 고르다가 산수유가 허공에 연노란 물감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노란색 차일이 하늘에 걸리는 듯 하면 개나리가 휘어지게 피어올라 노란 천지를 만든다. 노란들판을 화폭삼아 목련이 도도하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자태를 뽐내면서 봄은 성큼 목덜미를 간지른다. 한 송이 한 송이가 마치 등불을 밝혀든 것 같다는 찬사를 받기도 하고 도도하게 하늘을 치받는 듯 하게 피어올라 아름답다 못해 교만해 보인다는 빈축 아닌 빈축을 받기 까지 하는 목련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사람을 홀리고 나면 벚꽃이 단숨에 온 천지를 제압해 버릴 듯 화사하게 피어올라 봄꽃의 절정을 이루게 된다. 이런 풍경이, 이런 봄꽃 시계가 이어져 내려와 우리는 그 차례를 기다리면서 마음속에 잔잔한 호기심과 설렘을 안고 그 꽃들의 왕림을 기다리는 재미를 만끽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때 부터인가 슬슬 그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뒤에 피던 꽃이 앞질러 피기도 하면서 혼자서 천지를 다 차지했던 앞선 꽃의 위용을 가리기도 하고 기다리기 전에 온 꽃은 환영 보다 어리둥절해 하는 혼돈의 대상으로 야릇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 아예 뒤죽박죽이 되어 온 통 한꺼번에 일제히 개화라는 비상 타종이라도 울렸는지 어쨌는지 다 함께 피어올랐다. 기다린 후면 눈물 나도록 진한 환영을 받았을 텐데 이건 뭐냐는 식의 놀람으로 영접을 받게 되었다.


때 이른 벚꽃의 만발로 벚꽃 축제를 준비했던 지자체들이 난감해졌다. 행사를 갑자기 앞당기자니 준비가 만만치 않고 그대로 두자니 꽃이 다 지고 난 후에 꽃 없는 꽃 축제를 벌이는 모양새를 생각하면 기가 막히는 입장이다. 그야말로 앙금 없는 찐빵이 되게 생긴 형국이다. 이럴 때 순발력을 발휘하는 건 아직 우리 공무원의 세계에는 어불 성설이다. 그런 일은 민간 운동 시민단체들에게나 기대 해 볼 일이다. 거기다가 연예프로의 출연진 들의 예약을 움직이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봄이 맞다.


여러 곳의 꽃동산이 하나같이 풍요롭고 아름다우니 굳이 다른 동네까지 갈 필요가 없어져서 꽃구경의 대이동도 점점 더 뜸해 지는 마당인데 지나치게 빨리 피어버린, 그것도 동시 폭발(?)에 가까운 상황이 되고 보니 올해 봄꽃 구경은 매력이 꽝에 가까운 실정이다.


눈요기에 지장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심각한 것은 생태계의 악영향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우선 벌이 채 나오기 전에 꽃이 만발해 버려 꽃가루받이에 문제가 있어 과실의 경우 피해는 이루 다 말 할 수 없고, 벌들은 영양 공급에 문제가 생겨 개체수가 엄청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의 걱정이다. 이런 심각성이 전해지자 숙연해 질 수밖에 없이 되었다.


우리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면 이런 재앙을 막을 수 있을것인가 하는 것이 심각한 숙제로 대두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지구 기후 온난화 현상은 결국 우리 인간들의 무분별한 편익 위주의 생활에서 비롯되었고 이대로 가면 해수면이 올라가 어차피 살수 없이 될 것이라는 예측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쏘이면 아프다는 생각이 앞선 꿀벌이 없어지면 지구의 종말이 온다는 보도를 읽고 경악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정말 그렇다지 않은가? 안 되겠다.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이 우선 할 수 있는 일부터 발 벗고 나서서 시작하자. 환경운동이 거창한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종이컵 하나라도 덜 쓰고 물잔 부터 가방 속에 넣고 다녀야겠다. 코로나 때문에 배달음식 수요가 많아지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이던 일회용품 폐기물도 대폭적으로 줄여야 한다. 다회용 그릇으로 바꾸는 강제적 규제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서울시가 장례식장에서부터 그 정책을 시행하기로 한 것은 아주 잘 한 일이다.


우선 봄놀이 나갈 때도 작은 도시락 그릇에 사랑스런 도시락을 싸서 들고 나가 빈 그릇을 가방에 담아 들고 돌아오는 것을 생활화 해야겠다. 지구가 죽게 되면 내 아이들이 살 수 없지 않은가? 우리들이 아이들을 태어나게 했으니 그 후손들이 쾌적하게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는 깨끗한 지구로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우리들에게 있지 않겠는가? 작은 힘이라도 모아보자. 올 봄은 환경 운동으로 시작해 보자.


내 고향 영덕의 대게 껍질이 타우링 계란을 공급해 내듯 재활용의 문제에 적극적 정책의 제안과 국민의 전폭적인 참여를 성공시켜야 우리가 산다. 이래저래 봄꽃 만세다. 내년에는 제대로 차례 껏 올 수 있게 우리가 준비를 잘 하겠다는 다짐을 굳게 해 본다.


우리 고향 영덕은 봄이면 복사꽃으로 덮여 무릉도원을 이루니 그 복은 하늘에 닿을 만 하다. 올해 복사꽃 또한 일찍 피어서 4월 5일에 친구들이 한데 모여 영덕으로 내려간다. 꽃이 너무 빨리 피어 다 져 버릴까봐 가슴 조이며 손꼽아 그날을 기다린다. 제발 복사꽃님이 천천히 오셨으면 좋겠다. 친구들과 어울려 복사꽃그늘 아래 얼굴을 마주할 생각을 하니 왁자지껄한 정다운 목소리들이 귓전을 울린다. 그래 마음껏 소리치고 웃고 떠들자. 건강한 복을 마음껏 감사드리고 오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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