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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추모사】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1.09.08 11:59 수정 2021.09.10 00:40

한영수 전 영덕군의회의장의 영면을 빕니다

↑↑ 김인현(고려대학교 교수, 재경축산면민회장)
선배님, 형님께서 저에게 행파한시집을 한권 구해달라는 것이 저에게는 마지막 대화가 되었습니다. 바로 일주일 전입니다. 저는 이용태 박사님이 그동안 발표한 한시를 모은 한시집을 지인으로부터 선물받고 이를 “영덕사람들” 밴드에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형님께서 바로 카톡으로 연락을 주셔서 한권 보내달라고 하셨지요.

 

갑작스런 부음을 듣고 저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형님은 저의 친구인 영일이의 형님이라서 사실 제가 형님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나이로 보아서도 10년 이상의 대선배님이셨지요. 저는 저의 아버님이 “한영수, 참 인물이다. 말이 논리정연하고 추진력이 있고 올바른 사람이다. 양반가 출신이라서 다르다 ”고 하시는 말씀을 자주 들었습니다. 저의 아버님이 형님보다도 20년 정도 선배이시지만 형님을 크게 신뢰하고 항상 칭찬하셨습니다.

 

형님은 축산항의 청주한씨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성장하고 자리매김했습니다. 형님네 집안은 제2대 국회의원 한국원 선생, 대우건설 사장을 지낸 한용호 선생 등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영덕지방 명문 출신입니다. 형님께서도 영덕군의원과 군의회 의장으로 피선되어 활동하시면서 집안의 전통을 이어갔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형님이 명문가인 재령이씨의 장손이신 이용태 박사님의 행파한시집을 저에게 구해달라고 하신 것도 형님도 전통있는 집안의 후손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설날 세배하러 다닐 때 형님을 먼발치에서만 쳐다보다가 제가 형님과 가까워진 것은 제가 교수로 자리잡고 난 다음부터입니다. 제가 고향의 발전을 위하여 이런 저런 제안을 하던가 아니면 고향을 그리는 수필을 고향의 신문에 기고하면 형님은 언제나 기뻐하면서 저를 칭찬하고 격려하여 주었습니다. 저는 1년에 한두 번은 형님을 찾아뵙고 좋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형님만큼 우리 고향 축산의 역사와 인물을 많이 아는 분도 없을 것입니다. 형님은 1384년 왜구가 축산항을 쳐들어와서 침략을 당한 것을 계기로 축산성을 쌓게 되었고 그 후로 수군만호가 축산에 주둔하게 된 점 그리고 침략을 알리는 수단으로서 봉수대가 봉화산에 있었다는 점을 저에게 소상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봉수대를 지키는 군인들이 100여명 있었다는 터도 가르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데리고 축산성터의 돌담을 보여주셨습니다. 축산항의 발전이 곧 영덕 북부지방의 발전에 직결된다는 점을 누차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축산항이 조금 더 개발되면 형님과 같이 축산항 문화해설사로 같이 활동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대구에서 관광차가 오면 형님과 같이 우리 고향의 아름다운 산천과 바다 그리고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는 역사를 관광객들에게 설명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황망하게 먼저 가십니까? 축산항의 발전을 위하여 형님의 가르침과 지도를 기다리는 동생들은 어찌하라고 무엇에 쫓기듯이 가시나이까.

 

형님께 미쳐 제가 고맙다는 인사말을 드리지 못한 것을 이참에 드려야겠습니다. 영덕군에서 각 면마다의 면지를 편찬했습니다. 저는 우리 축산항이 항상 잘 잊혀지기 때문에 집안의 어떤 어른 분에게 이번 편찬에서 축산항이나 염장 등의 인물이 있는 그대로 잘 기록되도록 특별히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축산면지를 받아보니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형님이 저의 그런 마음을 어찌 아셨는지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수정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하시면서 저의 입장에서 수정될 사항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수정될 사항을 적어서 보냈습니다. 1개월이 지나서 책을 전체로 새로 찍지는 못하고 증보지를 삽입하여 책이 낫장으로 넣어왔습니다. 형님의 노력으로 축산항의 인물들과 역사가 제대로 축산면지에 반영되게 되었습니다. 형님은 이렇게 어려운 일을 마다하지 않고 솔선수범을 보이셨습니다. 늦게나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제가 형님과 같이 저술하려고 했던 글이 미완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저희 염장의 안동김가네와 형님네 청주한씨네는 통혼이 유독 많았습니다. 한국원 국회의원의 어머님도 그 아랫대인 한용호 사장님의 어머님도 우리 집안의 따님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통혼에 대한 기록을 더듬어 가면 1900년대를 전후한 100년의 축산항의 역사가 어느 정도 기록될 것으로 보았습니다. “영덕 축산항 안동김씨와 청주한씨의 통혼에 대한 소고”라는 제목을 가진 글입니다. 제가 형님께 말씀드리고 기초만 잡아 둔 것인데....이제는 그런 내용을 아시는 두 분인 저의 아버님과 형님도 세상을 떠나시니 제가 이 글을 어찌 완성해야하나 막막하기만 합니다.

 

형님, 저는 형님의 박식함과 솔직함 그리고 그 고향과 후배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을 받아서 무척 따랐습니다. 제가 알기로도 축산과 영덕의 많은 분들이 형님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그런데, 형님은 선거에 낙선하신 일로 사람들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점을 많이 아쉬워하신 것으로 압니다. 형님, 선거에서의 선택은 형님의 인품이나 인격과 무관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그 때 그 때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서 이리 저리 표를 던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님이 한번 낙선을 하신 것이 축산이나 영덕에서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형님이 의원으로서 또 군의회 의장으로서 군정에 기여하신 점, 영덕군을 사랑하고 아끼고 발전시키려고 노력하신 점 이런 것들이 형님의 인품이 되어 높이 평가받으실 것입니다. 형님, 그런 사소한 인간사는 모두 잊으시고 저 하늘나라에서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명문가이시지만, 형님네는 풍족보다는 가난이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저 세상에서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풍족하게 여유있게 여생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루시지 못한 고향발전의 꿈은 후배 동생들이 또 맡아서 잘 해보겠습니다. 형님의 가르킴은 우리 후배들의 마음에 영원히 남아서 공유되고 또 대를 이어 후배들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그래서 형님의 75년 동안의 인생은 성공적인 것이라고 평가받게 됩니다.

 

한영수 형님의 영면을 빕니다.

 

2021.09.08.

 

고향 후배 김인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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