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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과 역사는 기억 속에서만 가치와 의미가 있다"
한 조각가의 전시장에서 들은 축사를 일기장에 옮기며 '기억' 이란 단어가 새삼스레 '깨침'으로 인식되었다. 내가 살아온 기억이 흐릴지라도 추억은 분명히 기억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실체감을.
출향이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고향의 봄>(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노랫말 속에 각인되었으니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로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음에랴.
꽃 중에서도 유난히 진달래를 좋아해 해마다 화폭에 담고 있고, 영덕의 군화(郡花)가 복숭아꽃(복사꽃)이니 마치 내 고향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처럼 여기게 된 것이다. 그 기억 속의 봄을 떠올리며 영덕군청 앞의 오십천을 바라본다. 사연인 즉, 2016년 무릉도원교가 보이고 복사꽃이 만발했던 봄에 제작한 작품 <영덕 오십천 무릉산의 봄>(131x270cm)이 영덕군에 소장되었기 때문이다.
무릉산(武陵山)은 해발 208m에 이른다. 전하기로 중국의 고사(故事)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국미술사에서 조선 초기 최고의 걸작은 <몽유도원도(夢遊桃原圖)>(1447년)로 당시 안평대군(安平大君)이 꿈에 본 이야기를 안견(安堅)이 그린 것이다. 여기에 복사꽃이 만발한 도원(桃園)을 이상향(理想鄕)으로 여기고 찾아가는 그림의 구성이다.
한편 조선의 수도 한양에서도 봄꽃놀이는 복사꽃이 즐비한 인왕산 기슭의 필운대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 장면을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이 <필운대>(弼雲臺)라는 명제로 그려 남겼다. 이렇듯 영덕에서도 무릉도원의 의미를 지닌 무릉산을 천하의 길지(吉地)로 여기고, 뛰어난 경관 주변에 복사꽃이 만발하여 해마다'복사꽃 잔치'를 여는 것이다.
영덕의 오십천은 강 유역의 지품면, 달산면, 영덕읍, 강구면 농경지에 용수를 공급하고 주민들의 식수를 공급하는 어머니의 강이요, 젖줄이다. 한 때 수질이 악화되어 문제가 깊었으나 2001년부터 가동한 하수종말처리장이 운영되어 수질이 개선되고 생태계가 점차적으로 회복되고 있다. 이에 대한 현장 보고서는 발로 뛰며 작성한 『골 따라 물 따라 오십천』으로 임진동( 전 영덕문화원 국장)이 짓고 영덕문화원(2024년)에서 발행한 책이 상세하다.
오십천 발원지별 지역하천은 포항시 죽장면 상옥리 성법령재에서 발원하여 하옥리를 거쳐 달산면 옥계리 침수정 앞에 까지 이어지는 약 20km의 하천(하옥천). 그리고 청송군 주왕산면 라리에서 발원한 가천으로 얼음골을 거쳐 달산면 옥계리 침수정에서 하옥천에 합류하는 곳. 다음으로 영덕군 지품면 기사리 대둔산에서 발원하여 지품리와 원전리로 흐르는 하천을 일컫는다.
현재 지역향토사, 생태연구가로 활동 중인 오십천의 저자 임진동 선생을 길라잡이로 오십천 발원지를 찾아가는 길. 봄바람에 벚꽃이 날리고 골짝마다 복사꽃이 한창이다. 마음이 들뜨니 봄날의 소풍이요, 나름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이다. '오십천 발원지 마을'이라는 지품면 기사리(其思里)에 도착하자 '대둔산 청정골 기사리'에 대한 표지석이 눈길을 끈다.
기사의 리(里)명 유래는 신라 말년(935년경)에 많은 충신들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 대둔산 아래로 들어와 은거했으므로 동명을 기사촌(棄仕村)이라 했으나 뒷날 기사동(其思洞)이라 하였다하며 일설에는 성종 년 간(1497년경)에 송씨라는 문사(文士)가 명명하였다 한다. 마을 위치는 지품리에서 약 4km, 군청소재지에서는 서남쪽으로 약 28km, 지품면 소재지에서는 약 16km거리에 있으며,심산(深山)대둔산 골짜기에서 발원하는 물이 마을 앞을 흘러 오십천의 원류가 된다.
기사리 마을회관 앞을 흐르는 계곡에는 개드릅나무 한 그루가 막 연녹잎을 틔우고 원경의 대둔산이 앞산을 넘어 길손과 마주한다. 들녘에는 봄볕이 가득하여 이내 농부를 부르고 있다. 화첩을 접은 후 지품면 속곡리로 향하자 야산 아래 들녘이 온통 복사꽃 물결이다. 복숭아 농사 단지로 다홍빛이 지천이니 붓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잠시 도원(桃原)의 세계를 마주한 듯 하였으니... 이곳 지품면 복사꽃 마을은 1959년 사라호 태풍에 경작지를 잃은 주민들이 심기 시작해 영덕의 대표 특산물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 방향을 바꾸어 달산면으로 접어들자 흥기리의 궁터를 지나는데 주변엔 복숭아밭이 즐비하다. 또 소위 영감바우라고 부르는 수구만 마을 (달산면 옥산 3리)의 경관이 특별하여 차를 세웠다. 오십천이 흐르는 길목 위로 주변 산세가 빼어나다. 역시 주변엔 복사꽃이 흐드러지고. 이 장면에서 잠시 영덕 문인협회를 이끈 이장희 시인의 '오십천 연가'를 떠올린다.
깊은 전설처럼/ 영원으로 흐르는 강/ 복사꽃 붉은 향기/ 꽃물 밴 은어 떼/ 검정 고무신 벗어 놓고/ 알몸으로 딩굴던 어린 시절/ 뜨겁던 사랑/ 수줍은 소녀의 검은 눈동자는 / 먼 기억으로 남고 // 흐르는 세월은 가도/ 강물은 그날의 하늘을 닮아 /야시홀 고전의 풍속으로 / 말없이 동해로 흐르고 있다.
한편 오늘의 현실은 예전 1986년 우루과이 라운드 관세무역 협정(GATT)으로 인해 복숭아 농사가 대체 작물로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통조림으로 가공하여 보급해 오던 복숭아 식품이 수입품에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수산물 영덕게와 함께 알려진 복숭아 생산이 절반이상 줄어들었다니 크게 아쉬운 일이다. 물론 경제성에 따른 변화를 인지해야지만 지역 특성을 알리는 홍보로서도 복숭아 농사는 장려되고 꾸준한 지원이 있어야 하겠다.
글머리에 인간은 자신의 '기억'속에서만 진정한 추억이 살아나고 마음에 각인된다고 옮겼다. 그래서 시인의 추억이 과거의 잔영일지라도 그때가 그리워진다. 다시 올 수 없는 세월의 강물을 거슬러, 영덕 구계항에서 태어난 김동원 시인의 시를 음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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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천>
어릴 적 난 홀어머니와 함께, 강가 백로 외발로 선 오십천 천변에 핀 복사꽃 꽃구경을 갔다. 봄 버들 아래 은어 떼 흰 배를 뒤집고, 물결이 흔들려 뒤척이면 붉은 꽃개울이 생기던, 그 화사한 복사꽃을 처음 보았다.
젊은 내 어머니처럼 향기도 곱던 그 복사꽃이 어찌나 좋던지, 그만 깜박 홀려 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갓 서른이 넘은 어머닌 울고 계셨다. 내 작은 손을 꼭 쥔 채, 부르르 부르르 떨고 계셨다. 그 한낮의 막막한 꽃빛의 어지러움, 난 그 후로 꽃을 만지면 손에 확 불길이 붙는 착각이 왔다.
어느새 몸은 바뀌고, 그 옛날 쪽빛 하늘 위엔 흰구름덩이만 서서, 과수원 언덕을 내려다본다 새로 벙근 꽃가지 사이로 한껏 신나 뛰어다니는 저 애들과 아내를, 마치 꿈꾸듯 내려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