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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금요칼럼] 어떤 길 위에서 ..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6.04.30 10:30 수정 2026.04.30 10:36

최 정 연 칼럼위원

다시 선거철이다. 희망과 실망사이에서 애써 침묵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목청 돋구는 사람도 등장한다. 내가 생각하는 선거철은 우리가 살길을 묻는 시간이라 감히 생각한다. 길을 선택하고 확장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마음이 뒤숭숭함을 뒤로하고 지난 계절 제주의 오름 사진을 오래 들여다본다. 새별오름을 바라볼 때마다 모든 길은 마음으로 향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인생을 정복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삶은 쉼 없는 걷기다. 천천히 보고, 돌아보고, 함께 가는 일. 제주를 걸으며 배운 가장 큰 문장은 이것이다. 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발밑에서 시작되고 삶의 방향은 거대한 선언이 아니라 오늘 내딛는 한 걸음이 정한다는 것. 선거도, 공동체도, 인생도 결국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새별오름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다. 이 오름을 오르면 자주 삶의 능선을 느끼게 되는데 묵묵히 서서 의연하게 바람을 통과시키는 산. 아마 좋은 삶도 그런 모습일 것이다.
 

오름의 정치 미학은 높이의 경쟁이 아니라 공존의 질서로 자주 거론하기도 한다. 제주 새별오름은 홀로 솟았지만 바람길과 물길, 초지와 마을을 함께 살린다. 길도 그렇다. 좋은 길은 가장 빠른 직선이 아니라 공동체를 품으며 돌아가는 길이다. 정치 역시 속도와 지배의 기술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통과시키고 함께 버티게 하는 조율의 예술이어야 한다. 오름이 바람을 막지 않고 흘려보내 듯, 좋은 정치는 갈등을 억누르지 않고 공론으로 뜨겁게 순환시킨다.
 

제주를 걷는 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바람을 읽고, 돌을 밟고, 침묵을 듣는 일이다. 길은 목적지를 향해 곧장 나아가지 않는다. 휘고, 돌아가고, 멈추고, 다시 이어진다. 보아라, 사람 삶도 그렇지 않니? 되묻는듯하다. 올레길을 걸으며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길이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점이다. 화려한 봉우리를 향해 질주하기보다 마을로, 돌담으로, 바닷가 골목으로 스며든다. 그 길은 늘 사람의 삶 가까이에 있었다. 늘 공동체를 통과한다. 그래서 올레길은 자연 탐방인 동시에 사람 공부다.
 

선거철이면 지역에는 늘 거대한 약속들이 쏟아진다. 개발, 투자, 유치, 성장. 모두 듣기 좋은 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자주 '무엇을 할 것인가'만 묻고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를 놓친다. 절차가 생략된 개발, 주민 동의 없는 사업, 이해당사자 배제 속에서 추진되는 경제정책은 길이 아니라 밀어붙인 흔적일 뿐이다. 좋은 길은 강제로 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걸으면서 생긴다. 길은 가장 효율적인 방향으로만 나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때로는 돌아가게 만들고 돌담을 끼고 걷고, 마을을 지나고, 바람 많은 해안을 따라 우회한다. 목적지에 빨리 닿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을 품게 만든다. 또한 길은 속도가 아니라 관계를 고려한다. 오늘 지역 정치도 이 질문 앞에 서 있다. 우리는 빠른 성장을 약속하는 길 위에 서 있는가, 아니면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만드는 길 위에 서 있는가. 지금 우리는 어떤 길 위에 서 있는가.
 

능선을 걷다 보면 바람이 한쪽만 불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정치는 원래 여러 의견이 충돌하는 자리여야 한다. 반대 의견이 있다는 이유로 배척되는 정치가 아니라 이견을 조율하는 정치가 건강하다. 지역 정치가 성숙하려면 속도 경쟁보다 공론의 과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제주의 새별오름은 중요한 교훈을 준다. 불에 타고도 다시 초록을 틔운다.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한 번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미래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복원할 수 있는 구조를 남겨두는 일이다. 투명한 절차, 주민 참여, 견제 가능한 행정은 공동체의 회복력을 만든다. 좋은 정치는 화려한 약속이 아니라 회복 가능한 구조를 설계하는 정치다.
 

지역 정치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대안 없는 개발론, 검증 없는 유치론, 공포를 활용한 동원 정치는 공동체를 좁은 골목으로 몰아넣는다. 길은 결코 하나가 아니다. 돌아가는 길, 쉬어가는 길, 함께 걷는 길들이 있다.
 

선거가 가까울수록 유권자가 물어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이 정책은 누구와 논의되었는가. 이 결정에서 주민은 어디에 있는가. 이 길은 10년 뒤 공동체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가. 이런 질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미래의 길이 아니라 단기적 구호일 가능성이 크다. 정치는 결국 길을 정하는 일이다. 도로를 어디에 낼 것인가만이 아니라 공동체가 어떤 가치 위에서 살아갈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다. 경쟁의 길을 갈 것인가 공존의 길을 갈 것인가, 밀어붙이는 길을 갈 것인가, 숙의의 길을 갈 것인가.
  

 제주의 오름은 높이를 자랑하지 않는다. 묵묵히 바람을 통과시킬 뿐이다. 좋은 정치도 그랬으면 좋겠다. 권력을 과시하는 정치가 아니라 시민의 숨을 통하게 하는 정치를 기원한다.
 

길은 발자국이 증명한다. 정치는 기록이 증명한다. 그리고 공동체의 미래는 어떤 길을 택했는지가 증명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길 위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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