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오피니언
기고
|
|
|
1997년도에 김우연 군수님도 담당과장하고 예산계장을 데리고 중앙부처에 갔을 때 서무계장인 나도 군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싶어서 나름대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대구서 학교 다닐 때 아는 친구 중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중앙부처에 국장하는 친구들 몇 명 중 내무부, 교통부, 문광부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당시 공무원 관련 최고 기관인 내무부에서 기획관리실장을 하는 친구에게 겁도 없이 전화해서 영덕군수가 방문하니까 특별교부세를 우리 군에 좀 많이 배정해 달라고 전화를 하니까 이 친구가 하는 소리가 그런 건 군수가 알아서 한다고 하면서 자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하면서 바쁘다고 전화를 끊어 버렸습니다.
또 한 친구는 문화관광부 정책국장으로 있었는데 전화해서 우리 군수가 방문하니깐 선물 하나 달라고 내가 졸랐습니다. 그 친구들은 어릴 때 학교 다닐 때는 친구로서 허물없이 아무 말도 거리낌 없이 하는 사이였는데 막상, 공직사회에는 중앙부처 국장급 이상인 공무원과 시·군에 있는 지방행정 6급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였지만 촌놈인 나는 안면몰수하고 군 발전을 위하여 우리 군수님이 방문하니까 좀 잘 챙겨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내무부 기획관리실장인 친구는 행정고시 11회 합격하여 1996년에 행자부 기획관리실장을 하던 양종석이었고, 문화관광부 정책국장인 김순규는 행시 10회 합격하여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김우연 군수님이 중앙부처를 방문하고 돌아와서 내무부 양 실장이 자네 얘기 하더라길래 그래도 어릴 때 친구(대구 친구)들은 의리가 있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문광부 있는 친구한테는 내가 전화하니까 선물 하나 주었다고 하면서 나중에 알게 될거야 하길래 이미 대충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해 5월 초 순경, 문광부 김 국장이 전화와서 국비 교부신청서가 안 왔다고 군수님한테 보고하라고 해서 군수님 실에 가서 보고 드렸더니 새마을 과장과 담당 계장을 군수실에 오라고 하여 연락하고는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대충 파악한 결과 아직도 문화예술회관 신축 부지가 선정되지 않아서 군수님이 화를 많이 내신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영해면 3.1 의거탑 근처 야산에 있는 만 평정도 확보하여 문광부에 사업을 신청하였고, 문광부에서 국비 오천만 원이 교부 결정되어 우리 군에 문화예술회관 신축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바로 설계 용역 입찰이 실시되어 1998년도 10월 경에 설계가 완료되어 경리계로 넘어왔습니다. 저는 1998년 1월 1일 자로 경리계장 보직을 받아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또 무슨 인연인지 제가 또 맡아서 입찰을 봐야, 될 운명이었습니다. 예주문화예술회관이란 명칭으로 입찰공고를 했습니다. 기한이 촉박해서 입찰일 1998년 10월 31일 자 공고해서 1998년 12월 31일에 군청 회의실에서 업체를 참가시켜, 입찰한 결과 1998년도 마지막 날에 1군업체는 ㈜화성과 2군업체는 지역업체인 화남건설㈜이 컨소시엄으로 낙찰되었으며, 1999년부터 두 개 업체가 공사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주문화예술회관이 영해에 있게 된 것도 당시 내 친구인 문광부 국장으로 있던 김순규가 전적으로 도움을 주어서 된 것입니다.
공사입찰도 제가 경리계장으로 가서 입찰을 무사히 끝냈고, 1999년 1월 1일 자 예산계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저는 예산계장으로 가서 우리 군의 예산확보를 위하여 중앙부처의 인맥을 알아보기도 하고 전화도 많이 했습니다.
1999년도 4월경에도 군수님을 수행해서 중앙부처를 방문하여 예산확보에 일조를, 했습니다. 군수님과 문광부에 갔을 때는 제 친구 김순규는 벌써 문광부 기획관리실장을 하고 있어서 군수님과 같이 실장실에 가서 군에서 준비한 예산 요구서 설명을 상세히 한 결과 영덕군에서 요구한 것을 거의 다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문광부 사업으로 수영장, 청소년 문화의 집, 실내체육관, 여성회관, 경북 북부 유교문화권 보수사업 등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김순규 실장도 하반기에는 다른 데로 갈 것 같았습니다.
내 친구 하는 얘기가 자기 고향이 의성군인데 고향에서 뭘 부탁하는데 군수 전화도 없고 심부름 오는 친구도 6급 이하를 보내서 요구사항도 일반 편지봉투에 넣어 비서실에 두고 가기도 하여 고향에 사업을 해주고 싶어도 뭘 알아야 해주지, 하면서 나한테 하소연 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관심이 부족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반면에 우리 군은 사업을 하려는 욕망과 군수님의 실천 의지가 돋보인다고 하면서 브리핑 차트 등도 다른 시·군보다 알차게 잘 해가지고 오고 군수님도 실력이 있고 해서 영덕군은 발전이 될 거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기획관리실장 1년 6개월 지난 후 1999년 6월경 차관으로 승진한 문광부 김순규 내 친구는 나만 보면 자기는 바다를 무척 좋아하고 해안가를 드라이브, 하는 것을 즐긴다고 하였으며, 해외 주재관 생활을 오래 했는데 주로 바다가 있는 나라에서 근무를 많이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시간 나거든 영덕에 한번 오라고 했습니다. 1999년 여름 8월 토요일에 영덕에 부인하고 자가용타고 온다고 갑자기 연락이 와서 군수님한테 연락해서 토요일 점심을 대구탕과 영덕대게를 준비하였습니다.
김 차관 부부와 군수님 부부, 우리 부부 이렇게 6명이 점심 식사를 같이하고 난 후 오후 2시경 김 차관 부부는 자기 차로 강원도로 올라간다고 하여 헤어졌습니다. 제 친구는 정말 순수합니다. 대학교도 다니지 않고 독학으로 고시 공부해서 행시 10회에 합격한 천재이며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나중에 국민대학교에 입학해서 4년간 장학생으로 다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 1999년도 그해 9월 말경 군수님이 김영규 기획관리실장님에게 예산계장인 저하고 문광부 차관한테 가서 태권도 공원에 대하여 설명하고 오라고 지시하여 실장님 모시고 서울 청와대 앞 미 대사관 옆에 있는 문광부 청사에 갔습니다.
차관인 친구가 부재중이었으나 차관실에 들어가서 차트를 갖고 차관비서에게 설명을 하려니 이미 청와대에서(김대중 대통령) 전북 무주군으로 결제하였다 하면서 어쩔 수가 없군요 했습니다. 혹시나, 싶어, 갔었는데 태권도 공원은 사전에 먼저 결정이 되었던 것, 같았습니다. 경주시도 유치할려고 무척 노력했는데도 안 되었습니다.
이상과 같은 국비 공공사업 유치 과정은 저의 공무원 생활의 한 단면입니다. 돌이켜 보면 예주문화예술회관의 유치는 저의 친구가 문광부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군에 유치되었습니다. 선거에 출마하는 일부 인사들은 자기가 유치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저의 공무원 생활의 한 단면과 사실을 지금까지 얘기한 것입니다.
김우연 군수님과 김영규 기획관리실장님은 예주문화예술회관을 유치하는데, 직접적인 노력뿐만 아니라, 혼신의 힘을 쏟고 영덕군 발전에 한 축을 일궈낸 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