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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쉽게도 이를 알리거나 아시는 분은 그리 많지가 않아 아쉬울 따름이다. 그 당시 장군은 나라가 풍전등화가 되어가든 임진왜란 때 김제군수로 부임하여 웅치전투에서 왜적과 싸우다 장렬히 돌아가신 의병장으로 왜군 별동부대장 고바야카와도는 비록 적장이지만 정담장군의 충성스러운 의기를 높이 기려 관군들의 시신을 모두 거두어 웅치전투 현장 길옆 숲속에 합장하고 그 위에 애도의 비목(碑木)을 세워 "조선국의 충의로운 영혼을 삼가 애도하노라(弔朝鮮國忠肝義膽)"라고 넋을 위무했다고 한다.
또한 서애 류성룡은"이로 말미암아 전라도 지역만이 홀로 온전하였으니 어찌 높이 추앙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蓋嘉其力戰也由是全羅一道獨全)"라고 징비록에 기록하고 있다. 도원수인 권율장군도 자기가 주도한 행주산성 대첩보다 정담 김제군수가 이끈 웅치전투로 호남 곡창지대를 지킨 위업이 더 크다고 격찬했다는 내용이 그의 사위인 병조판서 이항복의 「백사집(白沙集)」에 기록되어 있으며,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에서도 이를 뒷받침할 만한 내용이 단편적으로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정담은 조선 명종 3년(1548) 평해군 기성면 사동리에서 태어났으며, 해월 황여일선생 부친판결사 황응징에게 공부를 배우면서 어릴 때부터 무인의 기개를 보였으며, 그 후 선조들의 고향인 창수면 인량리로 이주하여 살았다. 이러한 정담이 훗날 장군이 되어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선봉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면서 이제 우리고장도 장군의 충혼을 기리는 현창사업이나 추모행사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 한다.
전라북도에는 임진왜란 웅치(곰티재)전투의 영웅 정담 장군의 영웅적인 호국정신을 기리는 행사는 매년 곰티재 웅치전적비 현장에서 성대하게 거행되고 있다. 전라북도와 완주군·진안군에서도 민간단체들을 중심으로 웅치·이치전투 기념사업회가 결성되어 이 행사의 성공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단체의 상임공동대표를 맡은 지역 변호사와 고려대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뜻한바 있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한 곰티재 고개 아래 두목마을 이장은 웅치(곰티재)전투 현장을 알리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동분서주 하며, 정담장군 홍보에 수고를 아끼지 않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
그런데 정작 정담장군이 태어나고 자란 영덕과 울진에는 아직까지도 그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조그마한 행사조차 없다. 다만 장군의 충절에 관심을 가진 몇몇 분들이 그의 빛나는 호국정신을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면서 여러 기관에 호소하며 동분서주하고 있고 장군의 후손들이 매년 사당에 배향하는 것이 고작이다. 갈수록 국가를 위한 희생에 대한 관점이 세대별로 달라지는 요즈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지난 역사 속에서 국난 극복의 현장을 돌아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다가 희생되신 분들을 기리는 일은 우리들의 후세를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담 장군처럼 훌륭한 분이 태어나 자란 이곳 영덕과 울진은 아직도 곳곳마다 그 분의 숨결이 느껴지는 고향땅에 대를 이어가며 사는 우리로써는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말끝마다"충절의 고장"이라고 홍보하면서 몸은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바로 잡아 가자.
나아가 전라북도 완주군·진안군과 교류를 통해 정담장군의 추도 행사에도 참석하고,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정담장군을 비롯한 의병장 장산 신돌석장군, 벽산 김도현선생, 무의공 박의장장군, 의병장 신운석장군, 위사공신 박송비장군 등 우리지역이 낳은 훌륭한 분들을 추앙하는 순국선열 역사문화 테마공원을 조성하여 군민들의 자긍심을 갖도록 하고 살신성인 정신과 자신의 신분에 상응한 도덕적 책임과 의무를 다하신 우리고장 호국선열들의 얼을 오늘을 사는 후세들이 길이 보전하고 선양할 수 있도록 다함께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영덕군의 문헌을 살펴보면 예주(현, 영해)는 1,018년 보성부·영덕군·평해군·영양군·청기현·송생현이 예주 관할에 있었다. 그래서 영덕 영해·울진 평해·영양 일월은 정담장군과 깊은 인연이 남아 있는 곳으로 정담장군이 이거해 살았던 창수면 인량리 나라골 뒷산(뒤골) 함양박씨 입향조(원모재 선생) 묘소 하에 정담장군의 묘소가 있으며, 창수면 인량리 마을 입구에는 장군을 추모하는 사적비와 충열문이 있고, 장군의 증손인 정희주공이 영양군 일월면 도곡리로 이거한 후 명고서원(明皐書院)에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