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오피니언 기고

[기고] 아흔 살 전후(前後) 늙은이들의 별난 동창회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5.10.31 09:37 수정 2025.10.31 09:43

한영탁 (언론인. 수필가)


영중(盈中) 제4회 졸업생들이 지난 24일 영덕에서 특별한 동창회를 가졌다. 6.25전쟁이 휴전된 직후인 1954년 영덕 중학을 나와 청운의 꿈을 안고 헤어졌던 학우들이 71년이 지나 나이 아흔 살 전후의 상늙은이가 되어서 해후하는 감격적 모임이었다.
 

영중 제4회 전국동창회는 2004년 오재형 동기가 영덕중.고등학교 총동창회장으로 선출된 것을 계기로 하여 발족했다. 그에 앞서 동기들은 영덕, 대구, 부산, 포항, 서울 등지에서 따로 동기 모임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재형 동기가 총동창회장으로 선출되자, 그를 뒷받침하는 힘이 되자는 취지에서 전국동창회로 통합하게 되었다.
 

이 모임은 10명이 회장을 번갈아 맡으면서 13년간 해마다 영덕 칠보산 휴계소, 경주 코모도 호텔, 서울 교육문화회관, 대구 팔공산 관광호텔, 포항 청용회관, 시흥관광호텔 등지에서 전국 총회를 열어 회원들의 깊은 우정을 다져왔다. 그러나 동기회는 지난 2017년 창포 '향기마을'에서 40여 명이 모여 성황을 이룬 것을 마지막으로 공식 행사를 끝내기로 결정했다.
 

여든 살을 넘어선 회원들의 건강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그로부터 8년의 세월이 흘러간 뒤 그리운 얼굴을 다시 보고, 새로 개통된 강릉-부산 동해선 열차를 동승해 보자는 오재형 동기의 제안으로 감개무량한 이번 모임이 이루어진 것이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당초 4월로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러나 행사 이틀 전 불행하게도 고향 영덕을 덮친 비극적인 산불 재난으로 행사를 가을로 미루어야 했다. 준비팀은 지난여름 동안 일정을 재조정하고 숙소와 식당, 까다로운 열차 탑승권의 취소와 재개약을 하는 번거로운 수고를 겪어야 했다.
 

우리 영중 4회는 남자 두 반(班) 여자 한 반 모두 189명이 졸업했다. 그러나 이미 저세상으로 떠나가신 이가, 130여 분으로 추산되고, 생존해 계시지만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거나 와병 중인 분이 40여 명이나 되어서, 이번 영덕을 찾아온 분은 겨우 20명에 지나지 않았다.
 

세월의 무자비함과 인생의 무상함을 새삼 통감하게 된다. 이 자리를 빌려 작고하신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와병 중인 벗님네들의 쾌유를 바란다. 그러나 다정한 옛 친구들과의 만남은 늘 즐거운 것. 24일 11시 30분, 새로 생긴 영덕역에 도착하자 '동해선 철도 개통 기념 영중 4회 동창회' 라는 플래카드를 높이든 재향(在鄕) 동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게 포옹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뒤 경포 해물 식당에서 싱싱한 대방어회로 만찬을 나누었다. 우리는 강구 오션비치리조트에 여장을 풀고 곧바로 강산(江山)도로를 달려 옥계로 단풍 구경에 나섰다. 하지만 마침 폭우가 쏟아졌다. 우리는 청송 얼음골 빙벽 등반코스로 가 커피를 마시며 우중의 절경을 감상하며 쌓인 회포를 풀었다. 저녁엔 제일가든에서 영덕의 명품 A급 자연산 송이 3킬로그램과 전골 요리로 만찬을 즐겼다. 그윽한 송이 향기 속에 우정의 대화가 무르익어간 멋진 오찬이었다.
 

이어서 모임의 하이라이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션비치리조트 다이아몬드 홀에서 동해선 여행 전야제가 열렸다. 영덕중고교 총동창회 임원 일행이 선배들을 축하하고 장수를 응원하러 찾아왔다. 축하 케이크와 샴페인을 들고 온 그들은 축시(祝詩)를 읊고 고향의 노래를 합창하며 폭죽을 터뜨려 주었다. 선후배가 어울린 멋진 한마당 잔치였다.
 

이 자리에서 오재형 동기가 우영환 제16대 현 총동창회장에게 동창회 발전 기금 100만 원을 전달했으며 부산에서 온 신영호 4회 동기도 즉석에서 거액의 총동창회 발전 기금을 기탁했다. 이어서 오(吳) 회장은 모교에 장기 근속하면서 모교와 동창회 발전과 '영덕 중,고 60년사', '영덕교육사' 등의 저술로 지역사회에 기여한 김동수 전 총동창회장에게 감사패와 금일봉을 전달했다, 참으로 뜻깊은 자리였다.
 

우리 일행은 이튿날 아침 8시 삼사해상공원 파나크 콘도호델에서 뷔페로 아침을 들고 강구 '해파랑공원', 창포 '해맞이공원'을 거쳐 화마가 휩쓸고 간 석리 '따개비마을'의 아픈 상처와 복구 상태를 둘러보았다. 정오에 영덕읍 백경횟집에서 물회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 2시 동해선 철도 누리호 열차 편으로, 강릉으로 향했다.
 

일행은 아름다운 동해의 절경과 산하가 어울어진 기찻길을 세 시간 달려 오후 5시 강릉에 도착, 저녁 식사와 이별의 잔을 나누고 모임을 마무리 지었다.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동창회 모임이었다. 아쉬운 석별의 시간, 필자를 포함한 고우(故友) 일동은 이런 귀중한 모임을 구상하고 수백만 원이 든 호텔 숙박비과 식대, 철도 여행경비, 총동창회 발전 기금 일체를 통 크게 희사(喜捨)한 오재형 벗의 깊은 우정에 거듭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를 도와 연락과 준비를 거들어준 박훈식, 임흥우 벗과 행사를 마칠 때까지 치다꺼리와 늙은이들의 안전을 지켜준 오재형의 막내아들과 그 친구들, 김인영 동기의 아들에게도 감사드린다,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동기 여러분의 건강과 안녕을 빌면서 글을 끝낸다.



저작권자 고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