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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반갑다" 풀어헤친 그리움의 봇따리에는 안부 인사와 우정과 사랑과 삶의 사연들이 쏟아져 나오고, 시도 때도 없이 튀어 나오는 고향 사투리는 역시 너와 나의 뿌리가 영덕이며, 고향 친구임을 넉넉히 채워준다. 어느듯 시간이 다 되었다.
2025년 8월 18일 11시 지금으로부터 63년 전 1962년 2월 7일 교문을 나온 영덕중학교 11회(통상 기수26회) 동창생들이다. 준비를 맡은 동기회 집행부(회장: 김광식, 총무 이재원, 준비위원 김재한 김동수)가 모임 장소를 모교로 했다.
당시 172명(남:120, 여: 52)의 이름을 새겨 모교에 세워둔 '사랑의 집' 이라는 기념석 앞에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모였다. 전국에서 모인 친구들이다. 팔부능선(傘壽 80세)에 올라온 친구들 26명이 63년 만에 모교에서 만났다. 세월의 무상함을 말하는지 그 때 그 모습은 어디가고 머리에는 눈이 내리고 얼굴에는 개울이 패여 팔십년을 달려온 인고(忍苦)의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은 운동장, 하늘과 맞닿을 것 같이 치솟았던 나무들, 학교 앞 과택 할머니 집에는 찐빵 냄새가 흐르고 하늘에 조각구름이 떠 있던 12살 배기들의 어린 시절의 교정에서 산수의 친구들이 고향에서 '팔순 동창회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만났다.
당시의 졸업생 남학생 120여 명 중 약 50여 명이 우리들과 운명을 달리하고 召天(소천)을 했다. 그 중 26명(남;18명 여:8명)이 기다림과 설래 임에 몸부림으로 따뜻한 손을 잡았다.
우람했던 교정 나무들은 간 곳이 없고 크게만 보이던 교정 안 울타리들은 마치 촌로들의 나무껍질 같은 손등 같았다. 내가 장성함인가? 마음과 시야가 변했음인가? 욕 한번 하지 않은 마음 좋은 '헛총', 복로 소주집 아들 여해 '덕보', 한 마실에서 장가 간 '지동이', 꼼꼼하고 매사에 빈틈이 없는 동기회 회장 '씩식이', 친구의 별명을 부른다.
팔순기념으로 만나 모교 그리고 변회된 고향 영덕을 둘러보기로 했다. 오래동안 모교에서 교편을 잡은 봇도랑(水路김동수)의 안내로 모교 다목적실에서 회장(목원; 김광식)의 인사에 이어 교장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현재의 학교 현황도 들으며 모교 방문의 따뜻한 환영의 차 한 잔에 그리움과 추억을 꺼내기도 했다.
봇도랑의 모교 역사 이야기와 우리들의 학창 시절의 교훈, 변화된 건물들을 사진으로 설명을 듣고 교감 선생님의 안내로 학교를 둘러 보고 점심 식사가 준비되어 있는 칭포 거북이 식당으로 갔다.
이렇게 8월의 폭염의 더위도 마다 않고 달려왔다. 그리고 먼저 하늘나라로 간 친구들의 명복(冥福)을 빈다. '시골집'-'수구지심(首丘之心)'은 출향인들의 追憶이고 哀歡이다.
首丘之心, 고향과 모교는 늘 그리운 것인가 보다. 首丘之心이라는 글귀가 실감 나는 만남의 場이었다. 저녁 5시 30분에 은어 요리를 가장 잘하는 영덕의 명물 '무릉산 가든'에서 아쉬움의 저녁 식사를 했다. 가벼운 하루의 발걸음의 쉼표를 찍으면서 고향 땅 밟기에 아쉬움을 남기는 저녁 어둠살이 대지에 내려 앉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