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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금요칼럼] 다시, 숲으로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5.05.23 09:50 수정 2025.05.23 09:52

최 정 연 칼럼위원

바다 숲으로 가는 길은 읍내에서 7키로미터 거리이다. 그 새벽 불길 따라 무모하게 달려나간 마음은 설마 나의 정원만은 피해가겠지 하는 간절한 소망 때문이었다. 못골 따라 오르는 숲길은 이미 처참한 상태로 녹아내려 사방 검은 잿가루가 목구멍을 매캐하게 달구었고 타오르다 나무 둥치 솔가지에서는 잔 불꽃이 다시 튀어 오르고 있었다. 눈앞에 마주한 도깨비불은 속수무책의 시간이었다. 해안 마을은 이미 피난처를 찾아 모두 벗어났는지 인기척이 없었다. 죽음의 시공간에 마주하고 있는 싸늘한 기분이었다. 괴기스러울 만치 무시무시한 혼돈 속에서 먼 도시를 불태우며 달려온 불은 동쪽 변방 바다마을을 끝까지 태워버리고 비로소 멎었다.
 

흔한 나무 한 그루 없던 황무지 임야를 치유정원으로 만들겠다며 몇 년을 가꿔 온 나의 정원도 잿더미로 사라졌다. 땀으로 얼룩진 긴 시간의 공간이었다. 한순간에 다시 황무지가 되어버렸다. 미션을 치르고 운영 인증을 준비한 마지막 과정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산림피해 확인 차원의 실사팀이 다녀가고 숯덩이로 녹아버린 입간판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마음이 자꾸 울렁거려 뻣뻣해진 편백이며 측백이며 벚나무며 체리며 꽃나무들을 몽땅 뽑아내 버리고 잿가루로 수북한 숲 바닥을 뒤집어주었다. 다 잃었네, 눈앞의 이 현실이 암울하고 참담했다.
 

산불의 후유증은 일상의 모든 의욕을 떨어뜨렸다. 시골살이 포기하고 도시로 떠나겠다는 담담한 그녀처럼 나도 이 황폐함에서 그만 벗어나고 싶어 오래 애쓴 계획 하나를 천천히 지워버리는 중이었다. 낯선 곳에 정착하면서 그 어떤 심리적인 고통도, 표리부동한 부당한 처사도 극복했던 내가 마음 엎어버리려는 그때, 함께 치유농업을 공부해 온 벗들이 멀리서 달려왔다. 꽃을 심어주고 위로금을 주며 다시 나무를 장만하라고 엎어진 마음을 일으켜 세웠다. 공방의 한 대표님은 잿더미 농장을 보더니 모 재단의 성금을 직접 전해 왔다. 나는 다시 또 꾸역꾸역 나무를 심고 있다. 내일은 나무 삼십여 그루를 직접 가져와 심어주겠다는 들꽃'19 K가 황송한 용기를 주신다. 나무아래 사람처럼 살아야겠다.
 

모두를 잃은 사람들과 더 깊은 슬픔에 빠진 사람이 너무 많아 울 수도 없는 일, 가족을 잃고, 집을 잃고, 일터를 잃은 사람들. 꿈 마저 잃어버린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서로 다독이며 살아보라고 날아온 퍼즐 조각 같은 미니 하우스들이 검게 타버린 골짜기 마을로, 학교 운동장으로 속속 도착하고 있다.
 

어느 사이 봄은 훌쩍 달아나고 아랫도리 둥치를 새까맣게 태운 아카시아 나무는 질긴 생명력으로 날아다닐 꿀벌도 안 보이는데 하얗게 자란 꽃밥을 흔들며 무심한 허공을 깨운다. 살아났다고 불탄 숲 어디에선가 연두 잎을 겨우 달고 나온 굴참나무 잔가지들이 이제 시시한 봄은 끝났음을 말하려는 마지막 아우성인가. 천천히 생각해, 나는 들어줄게. 상실감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에게서 자꾸 멀어진 검은 숲은 그저 말이 없다.
 

국가 재난 컨트롤은 제대로 작동했었나 크게 묻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정신을 가다듬고 모두 하나 되어 연대해나가야 한다. 시민과 연대하는 그 누구의 호통이 있을지라도 감히 정치적 편견이 섞인 핀잔은 내뱉지 말았음 좋겠다.
 

꽃을 피운 숲이 마을 하나를 먹여 살리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번 산불로 황무지가 된 숲을 하염없이 묶어둘 것이 아니라 사람이 떠나지 않고 가꾸며 살 수 있도록 개발접근이 좀 더 용이해지길 감히 바란다. 투기성 개발을 말함이 결코 아니다. 혐오의 이미지로 방치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역은 외면받을 것이다. 사람이 찾아와 걷게 만들고 쉬게 만드는 치유의 공간으로 속히 탈바꿈할 수 있도록 개인이 만들고자 하는 경관 조성 사업은 지역 행정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산불로 경제적 피해를 입은 지역소상공인에게는 더 세심한 케어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불탄 토양이 산불 이전 상태를 회복하는 데는 10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산림과학원은 분석했다.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라서 숲이 되기까지는 30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에게 나눠 준 숲의 공익적 가치를 떠올려보기란 끝이 없겠으나 앞으로 이 폐허를 어찌해야 할지 오랜 시간 복원해 가야 될 생태 현장에서 우리는 천천히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평생을 신세 진 숲이지 않은가.
 

별파랑공원 진달래심기에 동참해 달라는 SOS가 오늘도 붉은 밑줄로 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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