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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금요칼럼] 세종대왕님 고맙습니다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4.10.18 10:19 수정 2024.10.18 10:21

| 김 청 자 ( 패션 디자이너 김청자 브띠끄 대표)

모처럼 광화문에 나왔다.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한글날이라 야단 들인데 그냥 앉아 있기가 송구해서 나온 길이다. 
 

세종대왕님 동상 앞에 서 본 것이 얼마만인가? 아니 이렇게 차분하게 서 있어 보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엇에 그리도 쫓기며 살았는지 그럴 여유도 못 가지고 살아온 것 같다. 우리나라가 수년째 세계 문자 올림픽에서 1등을 지켜 오고 있다는 보도는 이제 새 소식도 아닌지 오래 되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와아 신난다 하고는 그만이었던 것 같다. 이제 좀 철이 드는가?

 

올해에는 한글날을 맞아 세종대왕님 앞에 인사라도 올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렇게 나섰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푸른 하늘에 구름까지 아름다워 한 폭의 그림이다. 광화문 너머의 북악은 어찌 나 아름다운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광화문의 한자 현판이 생뚱맞고 기이하게 느껴짐은 오늘이 한글날이어서 그런가 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며 아무래도 잘 한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문자 올림픽이 문제가 아니라 이제 우리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 선정 대상에서 단 한 표 차로 애석하게 탈락되었다는 소식에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계속 홍보해서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명을 들으며 든든하면서 눈가가 젖어왔다. 우리 한글의 우수성은 한 두 마디로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긴 말 하지 않으려 한다.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가장 우수한 언어로 뽑았을 때에야 그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한글만큼 여러 소리를 거의 다 표현해 낼 수 있는 문자가 아직은 지구상에 없다는 것은 다 아는 일이 돼버린지 오래다.
 

게다가 어떻게 600년 전에 오늘의 IT 시대를 내다 본 듯이 문자를 만드셔서 컴퓨터에 최적의 문자가 되게 하셨더란 말인가 말이다. 영어 알파벳을 훨씬 능가하는 우리 한글을 세계의 언어학자들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우리나라가 세계적 IT강국이 된 것은 순전히 세종대왕님 음덕인 것이다.
 

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글자를 몰라 답답하게 사는 백성을 어여삐 여겨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노라고 반포하신 세종 대왕님, 그런 임금님은 아직 세계사에 유례가 없다. 더욱이 그 옛날 군주주의 시대의 절대군주가 그런 백성 사랑을 하신 예를 찾아볼 수 없어 우리의 존경심은 끝을 잴 수가 없는 것이다.
 

깊이 허리굽혀 인사 드리고 물러나왔다. 세종대왕님 고맙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엎드려 큰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마음으로만 그렇게 하고 발길을 돌렸다. 뒷길로 들어서니 까페가 지천이다. 다방이나 찻집은 오히려 사람들이 못 알아 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며 세종대왕님의 인자한 미소가 떠오른다. 갑자기 무슨 큰 죄인이라도 된 심정으로 큰길 쪽을 바라보면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한동안 우두거니 서 있었다.
 

어떻게 만들어 주신 한글인데 이렇게 모독하며 지내고 있는 우리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외래어로 도배가 된 듯한 간판들 마구잡이로 흘러들어온 외래어의 범람으로 오염된 우리말을 새삼스럽게 발견하며 가슴이 울렁거린다. 죄송합니다. 이대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이 우수한 한글이 다 망가지겠습니다. 정신 똑바로 챙기고 지켜야하겠습니다. 우선 나부터 하나씩이라도 우리 말을 제대로 바르게 쓰고 외래어나 해괴한 신조어를 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다시 큰길로 나와 세종대왕님 동상 쪽을 바라보며 기도 하는 심정으로 한동안 서 있었다. 콜택시가 지나간다. 부름자동차라고 하면 안되는 것일까? 괜찮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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