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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방학이라고는 하지만 이제 각급학교의 졸업식이 막을 올렸다. 만나면 헤어지는 게 당연한 일인지 알지만 작별은 항상 가슴을 텅 비게 한다. 우리는 졸업을 끝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부정적 생각을 먼저 떠올려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서양 사람들은 졸업을 시작이라고 생각해서 출발의 축제로 여기는 생각의 차이가 그들을 즐겁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 졸업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다. 이제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가늠하는 선택을 앞에 두게 된다. 상급학교를 가는 문제가 그렇고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경우는 취업의 문제가 커다란 선택이 아니던가.
우리는 미래를 바라볼 때 두려움도 있고 설렘도 있다. 이제 우리가 선택을 앞에 놓고 어떤 자세를 가져야 될까 한번 깊이 생각해 보자. 그동안 우리는 먹고 살기 힘들게 살아온 시절이라 돈을 잘 벌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에 매사 초점을 맞추고 살아왔던 것이 현실이었고 현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다방면으로 발전했고 살림살이도 나아졌고 일자리가 없다고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훨씬 낫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게 현명한 판단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상급학교 진학에 있어서도 자신의 적성에 맞는 곳을 선택하면 된다.
취업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각기 다 다른 재주와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그것을 잘 살릴 수 있는 길이 최선의 선택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되돌아 보고 신중하게 택하는 자신의 결정을 어른들이 존중해 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예전의 사고 방식으로 젊은이들의 과감한 도전을 막아도 안 된다.
청룡의 해라고 꿈들이 크고 기대 또한 많은 것 같은데 그 기개를 꺾지 말자. 젊음은 무모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무모함 때문에 새로운 역사는 시작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른은 경륜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진취적일 수 없는 단점을 지니고 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입학시험의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림도 이 겨울의 중요한 풍속도 중 하나이다. 그 결과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뜻이 이루어졌으면 감사하고 반대이면 재도전의 의지를 불태우도록 격려해야 한다. 인생사가 단 한번으로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잘 아는 어른들이 실패한 젊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멋진 어른들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을 지켜내는 지름길이어서 그렇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임을 잘 설명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 오랜 나의 팬 인 우여사가 들어선다. 손녀를 앞세우고 왔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해서 재수를 결심한 손녀에게 기분전환용으로 발랄한 원피스 한 벌 해 입히려 한다며 밝게 웃는다. 야아, 역시 멋쟁이 할머니 아닌가?
노란 원단을 가리키는 손녀의 볼이 발그레하다. 희망을 갖고 싶어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 싶다는 손녀는 어두운 그림자가 없어 보기 좋다. 그래 실패를 딛고 서려면 저 정도 배짱은 있어야지. 대견한 마음으로 디자인을 함께 상의해 본다. 너무 넓지 않으면서도 활동적인, 단순한 디자인을 텍하는 손녀는 자신 만만하다. 저만하면 새로운 도전으로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낼만하다. 할머니의 하는 양을 보아서 그 집안의 분위기를 알만하지 않은가? 이렇게 주변에서 희망의 씨앗을 함께 심고 물을 주어 잘 키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가 쑥쑥 자랄 수 있다.
청룡은 그냥 코 빠뜨리고 앉아 한숨만 쉬고 있는 낙심자에게 까지 찾아갈 여력이 없다. 힘차게 뛰어 오르는 도전자에게 찾아가기도 바쁠테니까. 그래 우리 모두 청룡의 기를 받기 위해서라도 힘껏 뛰어 보자. 자기 선 자리에서 최대한 높이 뛰어 보자. 청룡은 반드시 내게 서기를 안겨줄 것이다. 새해는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