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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 숙 |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는 작품 ‘몬테크리스트 백작’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에게 ‘인간의 모든 지혜를 두 단어로 요약하면 그것은 기다림과 희망이다’라는 교훈을 남겼다.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기다림과 희망은 미래의 설계 속에 강렬하게 투영 되는 단어이다. 미래를 설계하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무한한 인내로 현실을 감내해 나가며 두려움이든 희망이든 영원한 지금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 속에서 인간 본성의 실현이 펼쳐지면서 삶의 방식을 개척하여 미래의 생활 방식을 터득하게 된다.
현재를 섬세하게 관리하며 미래 생활 방식을 터득하여 성숙하고 균형 잡힌 개인이 되기 위해서 아주 건강한 공동체가 필요하다.
건강한 공동체는 사회적인 유대감과 돈독한 인간관계가 매우 친밀하게 이어져 나가야만 형성된다.
일인(一人)생활자와 독거노인이 늘어나는 현재의 사회 흐름에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설계하면서 기다림과 희망을 꿈꾸어야 할까.
독거노인이 늘어가고 혼자 기거하는 인구도 점점 늘어가는 변화를 보면서 우리는 산업사회의 고도화된 경제성장과 편리하고 물질적 풍요에 박수를 보내거나 개인적인 만족감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보다 먼저 대가족 제도가 무너진 서양의 노인들이 모든 것이 고도로 발전 된 사회에 살면서도 동양의 대가족 제도를 대단히 부러워했다는 오래 전의 뉴스가 새삼 부각되는 우리가 되고 있다.
인간관계의 협력 속에서 상호간의 이해와 확고한 독립성도 형성되는 과정을 경험하는 대가족 제도가 미래의 희망을 더 단단히 이어준다는 생각이 점점 실감 되는 현실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의 대안이 오래전부터 그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깨달아야 할 시점이 된 듯하다.
복잡해지는 사회 속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것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경쟁에만 몰입하며 탐욕스럽고 자기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옛 대가족 제도에서는 혈연관계에서 익힌 문화로 인(仁)과 인(忍)으로 성장하면서 건강하고 튼튼한 정신세계로 성숙하고 서로에게 유순하여 서로의 힘들로 문제점들이 치유할 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리고 삶의 속도도 인간적이어서 인간적인 리듬으로 시간을 조율 하였으며 이해의 범주도 매우 넓었다. 자연과 늘 막연한 거리를 두는 생활에서 주고받는 언어 또한 너그러웠다.
혼자의 생활에서 겪는 단절과 경쟁의 과로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문화가 이제는 절실해지고 있다.
윤택하고 편리한 삶을 위한 개발과 경쟁에 비례하여 더불어 사는 공동체 문화가 거느리는 친밀한 유대관계는 자기를 치유할 수 있으며 온화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GNP가 높은 나라가 GNP가 낮은 나라 보다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은 결코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잘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경제 세계화에서 지역화로의 체계적인 변화 촉진으로 복지를 좀 더 폭넓게 꼼꼼히 살피고 갱신하는 것도 일인(一人)생활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는 지금에 매우 의미 있다고 본다.
전통적인 생활과 대가족 제도에서 파생 된 문화는 그 철학적 품격이 결코 낙후된 것이 아니며 그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자연을 난개발하거나 대량 생산으로 편리한 물자가 품부해지는 것만이 영원한 지금이 이어지는 유토피아적 미래가 아니다.
오래된 미래가 현대인 생활의 근간이 되어 긍정적인 삶의 추구가 필요한 우리 모두에게 스웨덴 출신의 언어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작은 티베트’라 일컫는 라다크에 머물며 쓴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권해 본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은 결코 케케묵은 명언(名言)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