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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만 해도 산은 송이 향으로 품격이 높아지고 있었고, 단풍으로 단장한 가을 산은 높아지는 하늘과 함께 우리에게 생활의 활력이 되는 미열이 잔잔한 자양분이 가을꽃으로 피어나는 정원 같았다.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 소리로 나이테를 키워 가던 아름드리 해송들은 시꺼멓게 타 버린 뿌리로 애달픈 신음을 하고 있다. 숨소리 없는 해송들의 사그라지는 가지들.
불폭탄 같은 어마한 식탐으로 골골을 누비며 휘쓸고 간 산불이 남긴 올 우리의 가을은 허탈이며 순서 모르고 왔다가 저 혼자 사그라지는 한낮의 무례한 먹구름처럼 어이없다. 살면서 겪으리라는 상상도 하지 못한 가을.
폭탄을 던지며 몇 구비 산줄기를 무섭게 집어삼키던 불의 식탐을 직접 보았던 사람들은 그 순간의 막막함과 절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는 딜레마를 겪고 있다. 특히, 순간적으로 불길에 싸여 내려앉는 터전을 눈앞에서 목격하며 망연자실하던 그 찰나의 끝을 우리, 모두가 다 공감할 수 있는가.
밤마다 송이 산에서 겨우 10여 년 남은 삶을 걱정하시는 구순(九旬)의 노인에게 이 가을은 어떨까. 밤을 잃고 산을 헤매시는 부모를 둔 자식에게 이 가을은 어떨까. 모두를 다 앗아간 어마한 식탐으로 누볐던 산불.
올해는 여름 동안 장마가 없어 가을 작물 작황이 좋다지만 수확량이 매우 떨어졌다. 농토가 사그라지고 기거하던 터전을 잃어 안정된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없는, 갑자기 들이닥친 불확실한 환경으로 생긴 트라우마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사회적 기능이 가장 안정적으로 형성되려면 자생적 질서가 순탄해야 한다. 우리가 코로나 19로 겪은 팬데믹 그림자는 철저한 사회적 설계 정립으로 무사히 넘겼다. 지역, 계층 격차에 따른 세밀한 설계와 사회적 제도적 지원으로 팬데믹 그림자가 쉽게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 보면서도 정확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지역, 계층 격차를 느끼게 하는 재해 후의 사회적 불평등 제도로 생기는 각종 단말마의 고통도 새로운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재산상의 상실은 대부분이 비슷할 것이며 정신적 상실은 정확한 분류가 더 어렵다. 모든 인류의 고향인 흙과 나무를 잃은 건 근본적인 것을 상실한 거다.
사람이 잠을 푹 잘 자야 모든 밤이 제대로 어두워지고, 사람이 자신을 위해 일을 하고 나면 반복되는 아침이 더 맑고 향기롭다 하였다. 이 진리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작은 자연이 되어 제대로 된 인간다운 성품을 가질 수 있기에 자연스럽게 흙과 나무에게 다가가며 사는 것이다.
이런 순환이 합리적인 관계로 연결되어야 하지만 나에게만 집착하면 눈 깜박하는 사이에 치명적인 실수로 명백한 법칙을 어겨 자생적 질서가 어그러진다. 자연이 바로 사회의 가장 든든한 뿌리이며 건강한 곤충, 야생동물, 등등이 바로 질서 있는 사회의 자산이며 상상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생존하는 것이다.
이 자생적 질서가 파괴되면 다시 복원 되는 데는 왜 그리 시간이 걸릴까. 사회적 시스템 전체를 관통하는 재해를 다시 푸르게 재생시키는 일이 왜 힘드는가 하면, 사회적 설계를 더 합리적이고 창조적으로 하여 인간의 기본이 위기 상황에서 안전하도록 회복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이 인류에게 주는 다양한 생태계는 환경을 넘어서 지역을 더 건강하고 경제·문화적으로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지속 가능한 발전 전략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로 인간의 평등한 고향으로 존재한다. 자연파괴는 미래의 일부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함께 이룬 공동체의 깊은 문화를 상실한 이 가을. 생소한 이주 터에서 다시 정신적 터전을 찾아야 하는 심각한 팬데믹으로 이 가을이 불법 소각되어 간다. 식탐이 어마한 불의 먹이가 된 우리의 가을은 언제쯤 상기된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