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그러다가 요즘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라고 할 만한 감동을 맛보게 되었다. 산불이 경상남북도를 넘나들며 맹위를 떨치고 꺼질 줄 모르게 타올랐다. 우리 고향 영덕도 불길을 피할 수 없었다. 고향 산천이 화염에 휩싸인 화면을 보며 속만 태우고 발을 동동 굴렀지 속수무책이었다.
집안 사람들, 친구들 얼굴이 떠오르며 가슴만 타들어갔다. 어찌해야 하나 무엇을 해야하나, 어떻게 고향을 도울 수 있을까? 온갖 상념만 가득할 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핸드폰이 울렸다. 받아보니 오래 알고 지내는 서울 친구가 어떡하냐, 가까운 사람이 피해 보지는 않았느냐, 고향이 저렇게 쑥밭이 됐으니 얼마나 속이 타느냐, 등 등 걱정을 함께 해주는데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십시일반이나마 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라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었단 말인가 싶으니 가슴이 뛰었다. 그런 전화가 며칠을 계속해서 걸려왔다.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여러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마음은 감동으로 따뜻했다. 다 기억할 수 없을 것 같아 부지런히 명단을 적어나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평소에 나는 이 벗들의 삶에 크게 관심을 가져본적이 있었던 기억이 별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좋아해 주고 또 진심으로 기뻤지만 그들의 주변의 일에 대해서 까지 관심을 가졌던 일은 없는 것 같다. 이런 아름다운 나라에 살면서 그 전면목을 몰랐다는게 부끄러웠다. 아아 내가 각박한 거였지 사람들은 아름다운 심성을 갖고 있었구나 하는데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내 몸이 작아지는 것 같으면서 어디론가 숨고 싶어졌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큰 행복으로 다가올지 몰랐다. 아아, 이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아름다운 사람들과 같은 하늘을 이고 산다는 행복감에 자꾸 입이 헤벌어졌다.
고향 친구들에게 전화해 보니 말이 아니었다. 각양각색의 피해들을 당해서 이루 다 열거하기가 힘들 지경이다. 게다가 불에 탄 것만이 피해가 아니라 더 큰 걱정은 재난을 당했다고 관광객들도 발이 끊겨서 대게 철에 문전성시는 고사하고 발길이 뚝 끊겨버렸다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찾아와야 대게도 팔고 물회도 팔게 아니겠느냐 말이다.
4월은 항상 복숭아 관련 축제가 있는 달이다. 이번 내려 갈 때는 서울 친구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모아들고 고향을 찾으려한다. 금전적 도움 못지 않은 아름다운 마음을 모아들고 가려한다. 이번 산불은 장기간이었고 지역이 워낙 넓어서 그 피해는 가늠하기가 어려울 지경임은 연일 보도로 알려졌지만 실상의 피해는 그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극한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능력이 어찌 자연의 힘을 거스를 수 있으랴만 속수무책이라는 말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비극이고 재앙이었다. 우리는 그 재앙을 겪으며 비로소 자연의 거대한, 아니 무한한 힘의 위력을 실감했다. 그 앞에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 것인가도 뼈저리게 느꼈다.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이 귀한 경험을 그대로 흘려 버린다면 그것은 인간의 오만을 넘어 자멸의 지름길로 달려감이나 다름이 없는 만용일 것이다.
하지만 그 극한 상황 속에서 이 세상의 아름다운 면을 발견하게 된 것은 축복이고 행운이었다. 영덕 군민들의 피해를 내 일인양 가슴아파하며 도움을 주려 애쓰고 있는 친지들의 마음을 하늘이 보듬어 주시리라 믿는다. 영덕의 우리 친구들이여, 이웃이여 힘을 내시라고 목이 터지라 외치고 싶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은 그저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조상들이 힘든 세상을 살면서 몸소 터득한 경험에서 나온 절규일 터이니 믿고 외쳐보자. 우리는 결코 주저앉지 않는다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신 국민 여러분 산불 피해 지역에 열심히 가셔서 위로도 하시고 물건도 팔아주시고 식당도 이용하셔서 그들의 삶의 터전이 피폐해지지 않도록 도와 주십시오. 피해 지역에 놀러 가는게 미안 하다고 생각하시지 말고 그들의 생업을 회생시키러 가는 응원군의 마음으로 어렵지만 걸음 옮겨 주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마음들이 산불 현장을 옥토로 갈아엎어 놓을 날을 기다리며 두손 모아 기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