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등성이를 거세게 뛰어넘는 바람이 불었다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 다가온 열기
발톱에 찢기고 거칠게 핥킨 시간의 공간
거침없이 휘몰아치는 도깨비 불씨로 기억되는
몹쓸 놈 같은
화마火魔가 남긴 아픈 흔적들
봄, 고향집 촌락으로 가는 길목마다
시뻘겋게 달궈지는 쇠붙이 구덩이가 보였다
날카로운 가시덤불보다 더 아프게 다가온
뜨거운 불구덩이가 보였다
평생을 흙에서 살며
황톳빛 혈맥으로 엮어진 흰 고무신 같은 마을에
생경스런 도깨비 불씨 날아들어
이제는 가슴 아픈 설화說話가 되어 버린
봄날, 고향집 마을
검게 타버린 유채색 같은 세월의 집터
말라버린 우물처럼 속울음으로 묻어둬야 할
잿빛 덮인 봄 들녘
이제는 시름 깊은 기억의 앙금으로 남았다
봄, 고향집 마을 초입
옹이처럼 깊게 박힌 화마의 상처
푸르른 들숨 날숨마저 멈춘 삶의 터전
언젠가
어두운 기억 묻어버릴
봄날, 샛노란 새싹 하나씩 키워내리라
이제, 화마로 덮였던 하늘에서 밝은 햇살 한 줌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