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오피니언 사설

[사설] 양천세헌록을 말하다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4.07.12 10:05 수정 2024.07.12 10:07

영해부 남면 양장(현 축산 2리)에는 안동에서 내려온 안동김씨 후손들이 살고 있었다. 효행이 뛰어났다. 이에 1830년부터 1860년대까지 영해부와 경상도 유림들이 이들을 표창하라는 상소를 수십 차례 올렸다.

결국 효자들은 철종으로부터 1853년 영덕 축산항 도치머리 소재 정효각을 하사받았다. 양천세헌록은 안동김씨 문중에서 탄생한 양대 효자(병형, 성균)의 이야기가 담긴 책자이다.

 

양대 효자를 표창해달라는 상소문 23편, 예조완문, 정효각기 등과 그 후손(제진, 관진)의 편지글 등이 모여있다.

상소문의 뒤에는 상소를 올린 분들의 이름이 적혀있어서 당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을 확인할 수 있다.

부자간에 주고받은 따뜻한 내용의 편지글, 김병교 이조판서 및 이장우 영덕 현감과 주인공들이 주고받은 편지글도 있다.

 

이장우 현감은 명란이 너무 맛이 있어서 밥을 많이 먹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편지를 통해서 1839년 당시 영덕 축산항의 명란이 선물로 보내진 사실도 확인된다.

당시의 사회상을 잘 알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사회상을 알 수 있는 책이나 사료는 우리 영덕지방에서 찾기 어렵다.

영덕에 사는 후손들이 집안에 내려오던 원본을 책자로 만들어 양청세헌록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번에 한글로 번역하여 이번에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오는 7월 20일 영덕문화원에서 발표회를 가진다.

정효각이라는 현판은 민규호 대감이 적었다. 예조 판서를 지낸 김병교 대감의 글도 정효각 안에 걸려있다. 

1830년대에서 1860년대의 영덕 지방의 선조들의 활동을 알 수 있는 양천세헌록은 정말 우리 지역을 위한 소중한 사료이다.

조선시대 국시였던 효행이 우리 영덕지방에서도 잘 지켜지고 있었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자랑거리이다. 통상 효자비나 효자각은 집안에서 새운 것이지만 정효각은 정부가 내린 것이라는 점에 가치가 있다.

 

그 내용이 기술된 양천세헌록은 그래서 더 가치 있는 사료이다.

이러한 가치 있는 사료의 번역작업이 계속되어 영덕의 문화에 합류되길 바란다.



저작권자 고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