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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금요칼럼] 짓다와 짓다 사이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4.05.17 14:59 수정 2024.05.17 15:01

최 정 연 팜그로브(주)농업법인 대표

인생은 어쩌다의 연속인가. 어쩌다 나는 도시 생활을 접은 지 어언 십여 년이 되었다. 또 어찌하다 농부가 되었고 테마 숲을 목적사업으로 벌여놓기도 하였다. 

 

십여 년 전 고집 센 남편에게 온 가족이 이끌려 하필이면 연고 하나 없는 이 허허벌판으로 들어와 졸지에 나는 경력단절 여성이 되어버리더니 일없이 이 마실 저 마실 뒷산이나 헤매다니다 결국 내 마음이 택한 결론은 어쩌다 숲 농사였다. 

 

전원생활에 대한 환상조차 품어보질 않았던 나는 숲에 대한 공부를 작심할 때의 심정은 언제든 내가 시끄러운 변방을 떠날 날이 오고야 말 것이야로 시작하면서 권태로운 시골살이 마음 한구석 불안한 나를 되잡기 위함도 있었다. 그것이 훗날 치유라는 지점으로 나를 이곳에 안주하게 만들 줄은 상상하질 못했다. 

 

'어쩌다 농부'라는 티브이 프로그램까지 현실 농부들이 등장하는 요즘 전 국민 관심사가 혹시라도 농사인가 라는 의문이 들기까지 한다.

 

農事란 "논이나 밭에 씨를 뿌리고 가꾸어 거두다"라고 표기되어 있다. 농사의 農은 하늘과 땅의 기운을 품어 내는 슬기와 땀의 시학이라고 어느 인문학자가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으로 풀어 놓았다. 

 

農은 고대 상형문자 과정에서 농부가 두 손으로 밭에서 부지런히 일 하는 모습을 상형한 글자이기도 하단다. 어쩌랴. 나는 두 손을 연신 모으고 부지런히 흙냄새를 맡는 것이다. 허리 굽혀 삽질하다 발 아래 무럭무럭 자라나는 풀들이 모두 하늘과 땅의 기운을 풀어내는 시였음을 무지한 내가 다 받아적지도 못하면서 그 농사라는 종목이 감히 내 인생의 새 방향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어쩌면 풀을 기를 지도 모른다. 

 

흙투성이 농사를 짓고 집으로 돌아와 서둘러 허기진 저녁밥을 짓는다. 짓다와 짓다 사이에서 농사와 찬밥 사이에 생각이 거든다. 농사를 짓다, 밥을 짓다, 시를 짓다, 그러고 보니 농사로 밥을 짓는 마음과, 시를 적는 가슴이 맞먹는구나. 짓다라는 어감이 주는 명료함과 먹먹함.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짓는 일이리라. 

 

참으로 짓다는 말에는 시에도 있고, 옷에도 있고, 집에도 있고, 글에도 있고, 심지어 웃음 속에도, 눈물 속에도 짓다가 있었구나. 농사짓다 에서 눈물짓다 까지 나는 오늘 짓다가 던져 주는 확장된 숲을 짓다로 이 글을 마무리 할까 한다. 

 

농업 현실에서 새롭게 등장한 치유농업! 농촌에 사는 어쩌다 농부들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봤으면 한다. 모든 농부에게 기회를 주고 기회를 선택받은 순간, 우리 농촌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짓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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