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서울을 방문한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우리는 힘든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데 그것을 극복하는 한 방법은 자신의 심리적 조각을 맞추는 고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의 내면은 일종의 항아리와 같아 깨지고 난 수십 개의 조각들을 풀로 붙여서 원래 어떤 모양인지 알아본다는 면에서 고고학과 비슷하다는 유연한 메시지를 던지며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는 청중의 질문에도 고고학자처럼 자신을 연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그리고 자신을이해하는 감성 훈련을 늘 해야 한다고 했다.
알랭 드 보통이 세운 10개국 인생학교에서는 직업적 스킬 대신 정서적, 심리적, 철학적인 ‘직업관’을 가지고 타인의 경험을 나눈다고 한다. 격무와 스트레스, 무한 경쟁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가 영국과 꽤 닮았다는, 그래서 한국인들의 불안에 대해 늘 깊은 관심을 가진다고 한다. 좋은 직장에서도 우린 왜 힘이 들까 라는 관객의 질문에 세분화된 조직 내에서는 일의 의미를 찾기가 어려워서 라고 답을 하였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 때문에 내 안에 있는 중요한 것들을 죽게 내버려둔다는 것이다. 그가 만든 인생학교의 좋은 점은 ‘이게 답이다’ ‘한 수 가르쳐 주마’라고 하지 않은 채, 서로 좌절 경험을 나눈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나만 불안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길을 따라라, 내면이 소흘히 했던 생각 속으로 더 자유롭게 방랑하라. 알랭드 보통의 문장을 읽어 가다 이쯤에서 나는 불쑥 내 유년의 심리적 퍼즐을 맞추어보게 된다. 학창시절의 나는 장래 희망사항에 시를 적는 사람이라고 농담처럼 적었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날의 여고시절 담임선생님께서 그렇게 적어 온 나의 장래 희망을 알아차린 것인지 그 아래에 모 대학 문예창작과를 추천함이라는 글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나는 정말 나만이 계산 해 본 일류는 낙방하고 내 자신의 심리적 조각 하나를 맞추게 된 첫 번째 인생학교와 같은 그 세계의 경험을 내 인생 최고의 역사로 남기고 있다. 그 후 나는 이 낱말에서 저 낱말로 천천히 늙어가면서 몇 개의 구체적 직업의 경험과 일의 슬픔과 기쁨도 무수히 맛보게 되는 것이다. 유년의 심리적 퍼즐조각 하나를 잃어버리지 않으려 지금도 농담 같은 미완의 시를 적었다 찢었다 반복하기도 한다.
나는 알랭드 보통이 말해 준 가장 정서적인 방식에 흡사한 행복 마인드맵을 풀어헤치며 어느 날은 불쑥 불안을 감춘 쓸쓸한 사람들을 이끌고 자연을 보러 가거나 아이들 앞에서 초록광대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도전에 온전하게 응하면서 좌충우돌 상처도 입는다. 나는 이런 지독한 감성에 길들여지는 내가 좋다. 직업적 스킬이 필요하든 심리적 철학이 필요하든 나는 그것이 내가 살아 있는 나였으면 하고 퍼즐조각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위로를 삼는다.
알랭드 보통은 말한다. 인생을 잘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는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을 어떻게 우리 실생활에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예술, 교육, 문화계 지인들과 런던에 인생학교(The School of Life)를 세웠다고 한다. 그의 인생학교는 일, 사랑, 관계, 죽음 등 살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과 더 좋은 삶을 찾는 과정을 돕는 글로벌 프로젝트인 것이다. 마음이 아플 때 찾아가는 좋은 병원 같은 곳. 유쾌한 에세이 같은 조용한 여행자들이 배움을 다시 삶의 한가운데로 앉히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곳!
인생학교는 결국 내 내면의 행복지도를 찾아 내가 서 있는 지점을 살펴보고 그 길을 확장시키고 다시금 가다듬게 만드는 이정표 같은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