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오피니언 기고

【김동원의 해설이 있는 詩-21】 산토리니 씨 위스키 한 잔 할까요?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2.12.31 04:42 수정 2022.12.31 04:46

손은주

 

 부겐빌레아 꽃 지는 날,

 정열은 죽었어요 그리스 에게해의 작은 섬에 갇혔죠

 

 산토리니 씨 위스키 한 잔 할까요?

 

 나의 사랑은 어디로 갔을까요

 당신의 장례식장에선 울지 마세요

 쪽빛 노을은 파도에서부터 시작되는 걸음마

 

 하얀 수평선이 찰랑거려요

 다시 돌아올 거란 말, 거짓말

 위스키잔에 살짝 기댄 바람이 말해주더군요

 

 사랑은 사탕이라 불러도 괜찮아요

 이응을 빼면 사라가 되겠죠?

 그렇다니까요 내 이름이잖아요

 

 상큼한 오렌지 터트리며 우리 만나기로 해요

 

 산토리니 씨 이아마을 색의 향연 보이나요,

 지중해 물결은 영원히 죽지 않아요

 나지막이 속삭이는 춤선

 

 그러니까

 내 안에 이별을 가둔 건 명백한 유기

 이제 흩뿌려진 그 섬을 돌려드릴게요

 

 아름다운 해변 선술집에서 만나요

 산토리니 씨는 오늘부터 나와 사랑에 빠질 걸요
 

 

 

손은주의 언어는 파편화된 몸이다. 함축적이고 반어적이다. 그녀의 언어는 꼼지락거리는 발가락이다. 발랄함과 동시에 산문적 리듬과 묘사에 뛰어나다. 서정을 치고 나와 현대시로 접근하는 힘이 강하다. 풍부한 몽상적 이미지와 심리의 비밀한 사유 전개는 내러티브하다. 한편, 그녀의 시는 금이 간 풍경의 직유이자, 빗금 친 배경의 이미지다. 손은주의 시「산토리니 씨 위스키 한 잔 할까요?」(시집『애인을 공짜로 버리는 법』. 2022, 시와 사람)는 낯선 서정의 돋을새김이자, 실험적 이미지는 신선하다. 예민한 촉수와 사물에 투영된 알레고리는, 그녀 시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하여「산토리니 씨 위스키 한 잔 할까요?」는, 그녀의 독특한 시적 뉘앙스를 풍긴다. 화법은 이국적이며, 중얼거리는 말 부림과 매력적인 어투는 동화적이다. 푸른 바다 에게해의 아름다운 섬 ‘산토리니’를 주제로 한 이 시는, 손은주의 밝은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우선, 「산토리니 씨 위스키 한 잔 할까요?」는, 우리를 아득히 먼 그리스로 데려간다. 기원전 15세기 화산 폭발 당시 모습 그대로 발굴된 산토리니는, 지중해의 보물섬이다. 새 둥지처럼 절벽 위에 세워진 ‘이아 마을’과 ‘피라 마을’은, 흰색과 코발트블루의 대비색으로 둘러싸인 동화 같다. 집과 집 사이 미로 같은 골목, 끝없이 펼쳐진 지중해의 수평선, 아슬아슬한 붉은 암벽 위의 카페와 식당은 한 폭의 그림이다. 그곳의 늙은 악사가 연주하는 이국적인 아코디언 소리, 푸른 바다 물속에 무작정 뛰어든 연인들의 비명은 천국 같다. 특히, 산토리니의 위스키와 와인를 마시며, 절벽 성곽에서 바라보는 지중해의 일몰은 황홀하다. 초승달처럼 생긴 ‘산토리니섬’을 손은주는, “산토리니 씨”로 다정히 부른다. 이런 섬의 의인화는, 참으로 파토스pathos를 불러온다.

 

“부겐빌레아 꽃”속의 진짜 꽃은 작아 눈에 띄지 않듯, “그리스 에게해의 작은 섬” “산토리니 씨”의 존재도 미미하다. 존재하는 것은 이름을 불러 줄 때 홀연히 제 모습을 드러낸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말이다. 명사 ‘산토리니 씨’야말로 ‘섬’이란 언어의 깊이에 인간성을 투영한다. 그리고 그 섬에 신성한 마력을 부여한다. ‘섬’은 수평의 시간과 수직의 지층을 드러내며 웃는다. 수천 년 단절된 바다와 육지와의 내밀한 말을 거짓말처럼 복원한다. 손은주는 시를 통해 마법처럼‘섬’을 부린다.“산토리니 씨 위스키 한 잔 할까요?”이 제목은 신기하게도 공감각적이다. 왜 이제야“나의 사랑”으로 온 거죠라고 되묻는 것처럼 여겨진다. 화산 폭발로 묻혔던“당신의 장례식장”을 빨리 잊어버리라고 위로한다.“쪽빛 노을”이 지중해에서“걸음마”를 배웠듯,‘산토리니 씨’의 인생도 이제는 아름다울 거라고 속삭인다.

 

 “하얀 수평선”이 그렇듯, 물론 “다시 돌아올 거란” 사랑의 약속은 “거짓말”이다. “사랑”을 “사탕”으로, 사탕을 “사라”로 유희한 말 부림은 절묘하다. 사라의 여성성이야말로‘산토리니 씨’의 남성성과 함께 멋진 대구(對句)가 된다. 그 두 이름은 “영원히 죽지 않”는 “이아 마을”의 흰색과 코발트블루로 찬란히 부활한다. “상큼한 오렌지”를 “터트리며” 손은주의 시 속에서 ‘산토리니 씨’는 극적으로 살아난다. 하여, 손은주의 사랑법은 “이별”의 또 다른 형식이다. 물론 그 출발점은 ‘산토리니섬’과 영원히 ‘상상’속에서소리 은유로 여행 한다. 「산토리니 씨 위스키 한 잔 할까요?」를 읽는 또 하나의 방법은 종결형의 ‘~죠, ~요’의 반복적 리듬에서 오는 매력이다. 이런 화법의 반복은 그녀 시의 행간과 연 사이 압축과 비약을 푸는 중요한 열쇠이다.

 


1962년 경북 영덕 구계항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1994년 『문학세계』로 등단,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2020년 『문장21』에 평론이 당선되었다. 시집 『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 『구멍』, 『처녀와 바다』, 『깍지』, 『빠스각 빠스스각』, 시선집 『고흐의 시』, 시 에세이집 『시, 낭송의 옷을 입다』, 평론집 『시에 미치다』, 동시집 『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 『태양 셰프』를 출간하였으며, 시평론 대담집 『저녁의 詩』를 편저했다. 대구예술상(2015), 고운 최치원문학상 대상(2018), 대구문학상(2018), 영남문학상 수상(2020)을 수상했다. 대구시인협회부회장 역임, 대구문인협회 이사, 한국시인협회원, 대구아동문학회원, 『텃밭시인학교』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고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