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팔각산을 오르다 잠시 쉬어가기 위하여 이 굴에 들어서면 천장에서 물이 졸졸 떨어져 내리는데 이 물을 맞고 있으면 시원하기가 그지없다. 오랜 가뭄이나 긴 장마에도 떨어지는 물의 양과 속도는 언제나 똑같다. 변동이 없다. 참말로 신기하다. 혹 굴속에 들어가 물을 맞는 사람 중에는 내같이 싱거운 사람이 있어 “버지기를 엎어놓지 말고 바로 놓아두었으면 물이 새지도 않을건데...”라고 하며 괜히 궁시렁거리기도 한다.
이곳에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이렇게 방울져 떨어지는 물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죽을 때까지 오랫동안 마시면 “팔각산의 신선(神仙)처럼 죽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다.”라고 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는 예전 한때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와 이 굴 앞에서 진을 치고 앉아 죽을 때까지 “이 물만 먹고 살았다.”한다.
버지기란 물을 받는 그릇이다. 입구가 넓고 커서 주로 물을 받아 사용하는데 있어 아주 유용한 그릇이다. 결국 굴의 모양이 물을 받는 버지기같이 생겼다 하여 버지기굴 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버지기란 영덕 표준말로 물이나 곡식의 이삭 등을 담는 나무로 만든 통을 말한다.
선인굴(仙人窟)이라 함은 인간 세상을 떠나 자연과 벗하며 신선의 도를 닦아 늙지 않고 오래 사는 신선(神仙)이 살았던 굴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런 이름은 신선과 관련된 이름이기보다 아마 팔각산은 신라의 수도 경주와 가까운 관계로 이런 전설이 생겼을 수도 있다하겠다. 아무튼 옥계의 일부가 예전에는 경주 땅이었으니 아마 그 시대에는 국선(國仙), 또는 선랑(仙郞), 화랑(花郞)이라고 불리는 신라의 화랑도(花郞徒)들이 이곳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높다 하겠다. 이는 신선굴(神仙窟)이 아니고 선인굴(仙人窟)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아도 이를 추정해볼 수 있다.
생각하건데 신라와 고구려, 백제가 서로 통일의 주도권을 다투던 삼국시대에 있어 당시의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 즉 경주와 가까운 이곳 양설령, 팔각산을 오르내리면서 장수왕과 한판 전쟁으로 미질부, 즉 지금의 흥해까지 내주었던 수치를 곱씹으며 삼국통일의 의지를 다짐하였던 수많은 화랑들이 이곳 팔각산(八角山)에 와서 옥계 37경(景)을 벗 삼고 선인굴을 거처로 삼아 피나는 수련(修練)을 한 끝에 마침내 동해안 한쪽 구석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선봉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선인굴(仙人窟)이란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이곳 외에도 우리 지역은 신라의 화랑과 관련된 전설이나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지품면 삼화리의 “자기가 쏜 화살보다 더 빨리 과녁에 도착하였는데도 늦게 도착하였다고 죄없는 명마(名馬)의 목을 치고는 통곡하며 후회를 하였다.”는 지품면 삼화리의 용마총(龍馬塚)의 전설, 강구면 삼사리의 삼선랑(三仙郞) 이야기 등 화랑의 이야기와 전설이 도처에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하루빨리 꺼내주길 기다리며.....
다음은 침류재(枕流齋) 손성을(孫星乙)선생께서 선인굴(仙人窟)을 읊은 한 수의 시이다.
저 아래에는 몇몇 선인(仙人)들이 굴속에서 살았는데 底箇仙人窟裏居
옛날에 듣기로는 향기로운 안개가 광려산처럼 끼었다는데 昔聞香霧在匡廬
지금도 떨어지는 물방울은 자못 영험하고 특별하니 至今滴霤頗靈異
서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반드시 허황된 것만은 아닐 것이네. 野語相傳必不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