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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제 22경(景) 마제석(馬蹄石)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4.08.23 09:44 수정 2024.08.23 09:51

영덕의 명승절경 옥계 37경을 찾아서(23)
| 영덕문화원 이완섭 사무국장

마제석(馬蹄石)은 침수정(枕漱亭)을 가기 바로 전 옥계주차장 첫 번째 매점 바로 앞의 도로 밑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 흔적만 조금 남아 있는 꼴이다. 이렇게 된것은 지품면 신양리에서 달산면 옥계리와 청송군 주왕산면 항리로 가는 도로를 닦을 때 거의 파손이 되고 지금은 그 일부분만 남아 있다. 말을 타고 다니는 시절이 아니고 차를 타고 다니는 시대가 왔으니 예전에 말이 다니며 남겨 놓은 말발굽 흔적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차바퀴 자국이나 남겨야지....     

 

이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아주 오랜 옛적에 옥계 침수정(枕漱亭) 뒤편의 왼쪽 바위 속 깊은 곳에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천마(天馬)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세상을 평안하게 할 장군이 잠들어 있었으며 또한 이곳 옥계(玉溪)에서는 장군의 탄생을 기다리는 용마(龍馬)가 숨어 자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오르며 세상을 평안하게 할 장군(將軍)을 기다리고 있었다."한다.

 

하여간 이런 전설이 까마득한 예전부터 전해 오기는 했지만 이런 전설이 언제 이루어질까를 서로 이야기는 하면서도 아무도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세월이 흘러 조선 선조 때인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기 수년 전 동짓달 초하루 야밤에 지금의 해월봉(海月峰)밑의 외딴 골짜기의 용(龍)씨란 성(姓)을 가진 화전민(火田民)의 집에서 울음소리도 우렁차고 몸집도 장차 장군이 될 것 같은 건장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이때 이 바위 속 깊은 곳에서 낮잠을 자던 용마(龍馬)도 이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듣고는 자기를 타고 하늘을 나를 장군이 태어났음을 직감적으로 알고는 뛸 듯이 기뻐하였다. 그런데 이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와 건장한 모습을 본 아이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장차 이 아이로 인하여 온 집안이 역적(逆賊)으로 몰려 삼대구족(三代九族)이 멸족(滅族)하는 해(害)를 입을까 봐 아이를 낳은 산모(産母) 몰래 맷돌로 눌러 살해하고는 뒷산에 묻어버렸다 한다. 

 

그런데 이때 바위 밑에서 장군이 될 아이가 태어난 것을 기뻐하던 용마(龍馬)는 갑자기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치자 덜 풀린 날개를 퍼덕이며 부리나케 아이 집으로 달려갔으나 아이는 이미 죽임을 당하여 마을 뒷산 한 모퉁이에 봉분이 없는 땅속에 들어가 있었다. 이를 발견한 용마(龍馬)는 벼락이 치는 소리로 울며불며 팔각산(八角山)과 옥계(玉溪) 사이를 짓밟고 다니다가 결국 수천 년 동안 자기가 숨어있던 곳까지 마저 밟아 부수고는 하늘로 솟아오르며 향로봉(香爐峰)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한다. 그때  팔각산(八角山)과 옥계(玉溪) 사이를 짓밟고 다니던 흔적이 세월에 씻겨 가고 사람들의 손에 부서지고 한 뒤 남은 자락이 이것인데 이곳 사람들은 이것을 당시의 용마(龍馬)가 남긴 발자국이라 하여 지금은 마제석(馬蹄石)이라 하고 있다."라 한다. 

 

이때 새겨진 용마(龍馬)의 말굽 자국이 부서진 바위 조각에 남아 지금의 도로가 나기 전까지도 선명하게 보였는데 당시 도로개설 과정에서 파괴되는 것을 직접 지켜본 사람들은 지금도 그것을 제지하지 못한 아쉬움을 간혹 자기 혼자 마음속으로 속삭이고 있다. 이렇게 말이다. "역적이 될까 봐 크지도 않은 아이를 죽인 것이나 조금 빨리 가기 위하여 하늘이 준 절경인 마제석(馬蹄石)을 자동차 바퀴 밑으로 들이밀 때 가만히 있었던 것이나 무엇이 다른가?"면서  말이다. 한번 파괴를 하면 그 원형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복원해도 그것은 원본은 아니잖은가?    

 

하여간 이런 전설을 알고 있던 옥계(玉溪)의 사람들은 남은 이 바위 조각을 마제석(馬蹄石)의 일부라 부르며 애지중지하고 있으며 지금도 이를 보존하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다. 

 

아무튼 이런 노력의 결과로 그 흔적이나마 조금 남아 용마(龍馬)의 전설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으니 간혹 이곳을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 저 멀리 날아가 버린 용마(龍馬)에 대한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을 수가 있게 되어 여전히 옥계(玉溪) 37경(景)의 하나로 사랑을 받고 있다.

 

다음은 마제석(馬蹄石)을 읊은 침류재(枕流齋) 손성을(孫星乙) 한 수의 시이다.

 

돌 위를 밟은 흔적이 진흙을 밟은 것처럼 뚜렷한데   石痕踏踏似瀜泥

둥글고 가득한 것이 분명 명마(名馬)의 발굽인 것을    圓滿分明寶馬蹄

찾아보니 옥으로 만든 구유가 가까이 있고   試看玉槽留近地

예쁜 머릿결 같은 물이 솟는데 당연히 모여 울지 않겠는가?   雲髮出水會當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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