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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16경(景) - 조연(槽淵)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4.07.05 10:25 수정 2024.07.05 10:28

영덕의 명승절경 옥계 37경을 찾아서(17)
| 영덕문화원 이완섭 사무국장

조연(槽淵)은 구유통같이 생긴 못을 말한다. 조(槽)라는 글자는 소나 말에게 여물을 담아 주는 그릇, 즉 구유통을 말한다. 대개 구유통은 흔히 큰 나무토막이나 큰 돌을 길쭉하게 파내어 만든다. 길쭉하게 파야 여러 마리의 소나 말이 머리를 가지런히 하여 동시에 한 끼의 먹이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옥계의 조연(槽淵)은 바위가 구유통과 같이 길게 홈이 파여 그 가운데를 옥같이 맑은 물이 흐르다 고여 작은 못을 이루고 있는 절경을 말한다. 침수정(枕漱亭) 정면 바로 우측 편에 있다.


이곳은 봄이 되면 바로 옆의 병풍암(屛風巖) 위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진달래의 꽃잎이 바람에 날려 쌓이고, 가을이면 팔각산(八角山)의 여덟 개 봉우리로부터 흩날려 떨어지는 낙엽이 잠시 이곳에 머물며 파란 기운을 죽이고는 저 멀리 강구(江口)항 앞바다까지 떠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전해오는 이야기에“예전엔 가끔 옥계를 유람하기 위하여 이곳을 지나던 유람객의 얼빠진 말이 조연(槽淵)에 쌓인 꽃잎과 낙엽을 보고 마치 여물통에 쌓인 여물로 착각을 하고는 텀벙 이곳으로 뛰어들곤 하였는데 이렇게 이곳에 뛰어들었던 말은 헤엄은 치지 못해 개헤엄을 치며 낙엽 쌓인 물만 잔뜩 먹고는 옥수(玉水)를 마셨으니 스스로 용마(龍馬)가 된 것으로 착각하여 조연(槽淵)이 좁음을 한탄하였다.”라 한다.

아무튼 이곳 조연(槽淵)에서 떨어지는 꽃잎과 낙엽에 묻혀 잠시 쉬던 옥류(玉流)는 다시 흘러내려 바로 몇 미터 앞의 구정담(臼井潭)에서 옷깃에 숨어 붙어있던 꽃잎과 머릿결에 붙어있던 낙엽들과 같이 구정담(臼井潭)의 절구공이에 의해 산산이 부서진 옥(玉)가루가 되어 오십천으로 흘러 달려 가며 옥계(玉溪) 전체를 옥색(玉色)으로 물들인다. 그래서 옥계(玉溪)라는 이름이 생긴 것은 아닐까?


남명 조식(曺植)선생이 사명대사(四溟大師)에게 지어 준“유정(惟政) 스님에게 준다네(贈山人惟政)”시가 있다.

 

돌로 된 홈통 위로 꽃은 지고 花落槽淵石

옛 절 축대엔 봄이 깊어라 春深古寺臺

이별할 때를 잘 기억해 두시게 別時勤記取

정당매 푸른 열매를... 靑子政堂梅

 

이 시의“돌로 된 홈통 위로 꽃은 지고(花落槽淵石)”라는 것을 보아 조연(槽淵)은 낙엽이나 꽃잎이 떨어져 쌓여 모이는 곳으로 볼 수 있다.


아무튼 옥계 산신령은 옥계를 보기 위하여 오는 모든 생명들, 즉 걸어오거나 타고 오는 사람들, 이를 사람이나 짐을 지고 오는 소나 말도 불쌍히 여겨 구유통, 즉 조연(槽淵)을 만들어 정신적으로나마 그 배고픔을 달래주려 하였으니 참으로 멋있는 분이라 하겠다.


다음은 침류재(枕流齋) 손성을(孫星乙)선생의 옥계 16경인 조연(槽淵)을 읊은 한 수의 시이다.

 

흐르는 물이 좁은 도랑을 만들어 마치 여물통 같은데 水勢成溝狹似槽

여러 말의 배(腹)를 채우고 배(舠)가 다닐 수도 있을 정도로 깊어 深齊馬腹可通舠

문득 이곳이 요지(瑤池)가 아닐는지 의심하는데 却疑此界瑤池是

 

 

 

신기(神技)의 준마(駿馬)가 남긴 자취가 바위 위에 확연하네. 神駿遺蹤石上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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